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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2008.1.4).소림사.장가계.계림. 7일째.

달소래 2019. 6. 22. 12:25

(추억속의 옛날 중국여행기를 올린다.)

7일 째 : 2008년 1월 4일

일정 : 계림 유람암동(동굴) 관람, 대용수관람, 월량산 자동차관람, 서가재래시장관광, 중식, 이강유람, 풍어암(동굴) 관람. 석식, 묘족 민속공연, 노천온천욕.

새벽 4시 30분 경 유수에 도착했다. 어제 먹은 술에 잠은 푹 잔 것 같다. 하지만, 컨디션은 별루 이다. 아무리 푹 잤지만, 기차의 침대칸이라는 한계는 있는 것 같다. 아침을 유수역 근처에서 먹고 계림으로 전세버스로 이동을 했다.

유람동굴에 들어가기 전 새벽의 계림풍경. (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계림에 들어서니 산세가 달라진다. 주위는 푸르고 봉우리도 아름답다. 장가계를 남자로 비유하면, 물과 부드러운 산이 어울어진 계림은 여자로 비유된다고 한다. 이러한 계림의 산봉우리는 36,000개에 달한다고 한다.
"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계림의 산수는 천하제일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계림은 그 풍치가 빼어난 곳이다. 당나라 때의 시인 한유는 계림 풍경을 보고 "강은 푸른 비단 띠를 두른 듯하고, 산은 벽옥으로 만든 비녀 같구나"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유람동굴의 웅장한 종유석. 조명이 황홀하다.(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원래 계림은 바다였으나 지각 변동으로 솟아 올라 육지가 되었고, 이때 지상으로 나온 석회암이 침식작용을 거치면서 독특한 카르스트 지형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생긴 기 묘한 형태의 봉우리와 종유석 동굴 등은 계림의 중요한 관광유산이 되었다.

계림은 광서쫭족자치구로서 장족자치구와는 다르다. 계림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계수나무 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서 음력 8월 15일 전후로 거리에 계수나무의 향기가 넘친다고 한다.
계림은 광주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이며 북경, 상해, 서안, 성도, 곤명 등 중국의 주요 도시는 물론 홍콩에서도 비행기로 직접 연결된다.

유람동굴의 종유석. 거시기를 닮은 것이 대단하다. ^^(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최근에 완성 되 계림 신공항은 대리석의 웅장한 공항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려면 상해를 거쳐 계림으로 가던지, 북경을 거쳐 계림으로 들어 가도 된다. 상해를 거쳐 가는 것이 좋다.

중국 남쪽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주도(主都)인 난닝(南寧)과 계림, 베트남과의 국경에서 가까운 화산풍경구(花山風景區)는 관광명승지로 유명하다.

또한, "산청(山淸/맑은 산), 수수(水秀/빼어난 물), 동기(洞奇/기이한 동굴), 석미(石美/아름다운 돌)"가 모두 어우러져있는 지역으로 계림의 산수는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장가계의 황룡동굴과는 또 다른 웅장한 모습의 유람동굴.(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중국돈 20위안 짜라 화폐의 뒷면에 올라와 있어 한국사람은 물론 서양사람과 현지인들의 관광객들이 넘치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석회암이 절반 이상을 덮고 있어 기온이 비교적 높고, 비가 많이 온다. 연평균 기온은 20℃ 전후이고 1월 평균 기온은 6~16℃, 7월 평균 기온은 25~29℃, 연간 강수량은 1,250~1750mm에 달하며, 건기와 우기로 나뉘며 특산물로는 유자와 건륭 황제가 좋아했다는 토란이 있다.

중국에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곳이 많아 평생을 봐도 다 구경을 못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중국서는 평생 세가지는 다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이강의 산수.(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하나는 넓은 땅덩어리로 인해 땅을 다 밟아보지 못하고 죽고, 지방마다 특이한 음식이 있어 음식을 다 못 먹어보고 죽고, 글씨가 하도 많아 다 읽어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또한 계림은 지형적으로 험해 장가계가 제일 늦게 해방이 되고 다음으로 늦게 된 곳이 계림이라고 한다. 계림은 중국 남쪽에 위치하며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은 약 4천 5백만 정도인데 장족, 한족, 묘족, 모한족 등 11개 민족의 다양한 민족으로 형성되어 있다. 명·청때 광서성으로 불리다가 1958년에 자치구로 성립되었다.

이강의 풍경(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시내와 교외에도 볼 만한 명소가 많으며 시가지 자체도 아름답다. 방을 구하기 어렵거나 비용을 절약해야 하는 사람은 계림 남쪽의 양삭(陽朔)에서 머물면 된다. 가이드 없이 여행할 경우에는 사전에 지도를 꼼꼼히 체크해서 미리 일정을 짜 두는 것이 좋다.

차를 타고 가다 보니 구멍이 뚫린 산이 보인다.
이름하여 월량산.
구멍이 뚫린 산을 멀리서 보면 앞산에 가려 달이 떠오르는 모양으로 보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계림의 첫번째 관광지는 유람암동(동굴)이다.

이강의 풍경(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아침 일찍 관광을 해서인지 우리가 첫 번 째 손님인 것 같다. 석회암의 동굴이라 장가계의 황룡동굴과 좀 차이가 있다. 아기자기한 면 보다 웅장한 흰색의 석순이 많다고 할까?
전문가는 다른 이야기를 할 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동굴이 습기가 많아 사진기의 렌즈가 성애가 끼어 사진을 못 찍을 정도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대용수를 갔다. 나무 이름은 모르겠는데, 사진에서 보듯 무지하게 큰 나무가 하나 있다. 설명을 안 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도 찾아보면 있을 것 같다. 별 것을 다 관광상품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설명을 들으면 무언가 있을 것도 같은데, 지금 생각하니 큰 나무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계림의 재래시장. 물건을 깍는 재미도 쏠쏠하다.(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중식을 하기 전에 가이드는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사라고 우리를 재래시장에 안내를 했다. 시장 한가운데에도 산과 물이 있어 시장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연못에 가마우찌도 있고, 성수기에는 행사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쇼핑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가이드가 데리고 가는 정찰제로 판매하는 곳 보다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떤 곳에선 45위엔 부르는 장갑을 5위엔에 사기도 하고, 등산복도 한국의 1/3 가격에 살 수도 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Made in China 도 아니고 Made in Thailand 제품이었다.

대용수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일행들.(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점심은 한국식으로 먹은 것 같다. 계림은 서양 사람들도 많이 오지만 한국 사람들도 많이 와 여행 내내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된장국인지 김치국인지 둘 중에 하나 인 것 같은데, 하도 맛이 있어 전부 배부르게 식사를 한 것 같다. 역시 한국사람은 김치, 된장국이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되는 것 같았다.

중식을 먹고 이강 유람을 했다.
이강은 길이가 437Km 인데, 정식으로 강을 유람하려면 양삭현까지 83Km를 배를 타고 점심을 선상에서 하면서 약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30여분의 배를 탔던 것 같았다. 비가 오지 않아 강의 수량도 풍부하지않았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풍어암 동굴의 모습(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배를 타며 보는 이강의 풍경은 환상적이다. 흐릿한 안개에 쌓인 산과 어우러진 이강의 물줄기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고 신선이 사는 곳에서 뱃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이강에는 3가지의 보배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봉미죽이라고 하는 대나무다. 멀리서 보면 고개 숙인 고목 같기도 하지만, 끝이 구부러진 대나무여서 봉미죽이라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나무는 주은래가 이강을 방문하고 나무가 없자 추천을 했다고 한다.
두번째는 이강의 물소라고 한다. 땅위에 풀도 먹지만, 물속에 있는 수초도 먹고 살며 석양에 물속에 있는 물소는 환상적이라고 한다.

풍어암 속에서 배로 이동을 하면서. (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셋째는 이강의 가마우찌다. 배를 타고 어느 장소에 가니 가마우찌를 장대에 올려놓은 사람들이 배에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면서 1000원씩을 받는다.
가마우찌는 하루에 400그람 정도의 먹이를 먹지만, 10키로그람 정도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한 마리의 가격이 물소 한 마리에 해당하는 우리 돈으로 60 - 70만원에 거래가 된다고 한다.

이강을 유람하고 풍어암 동굴을 갔다.
유람동암의 동굴보다는 볼 것이 많았지만, 조명과 아기자기한 맛에서는 황룡동굴 보다 잘 꾸며 놓지는 않은 것 같다.

풍어암의 동굴 벽에 달린 쥐의 모양. 갈색 부분이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쥐가 바위에 붙은 것처럼 보인다.(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시설이 오래 됐다고 한다. 관리도 일부는 인민정부에서 하고 일부는 대만인 운영을 하기 때문에 배를 바꾸어 타기도 했다.
배를 타고 가는 동굴의 수면이 거울 같아 물에 비친 동굴의 모습이 아름답다. 동굴에 쥐가 붙어있는 듯한 모양을 사진으로 찍어 봤는데, 못 알아보겠지만, 실물은 영락없는 쥐의 모습이었다.

저녁을 하고 소수민족 묘족의 민속공연을 보러 갔다. 가이드도 정확한 장소를 모르는 것 같아 현지인에게 물어보고서야 장소를 알았다. 마침 “둥둥” 장소를 알리듯 북소리가 들렸다.
공연장소에 들른 팀은 우리가 첫손님 인 듯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사진도 찍고 소수민족과 어울리며 사진 촬영도 했다.

풍어암 동굴의 장관.(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지금까지 예로 봐서 사진 찍는데도 최소한 돈 천원은 요구하는데, 여기의 아가씨들은 그렇지 않다. 미안한 생각에 활량인 형님아님이 돈을 주며 사진 찍는 분위기를 돋운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중국 현지인들이 들어오니 공연이 시작이 된다.
중국말로 설명을 하는데,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무희들의 몸짓으로 짐작 하건데, 당시 농경사회의 여러가지 생활양식 및 그 당시의 사회를 동작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함께하는 시간.
소속민족인 묘족 젊은 남녀의 구혼 양식을 실현해보는 시간이다.

풍어암 동굴을 나와서 본 경치. 계림은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다.(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우리 일행을 대부분과 몇몇 부티 나는 중국인들이 뽑혀 목에 빨간 띠를 두르고, 장식물을 달고, 총각 팀과 처녀 팀이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감으로 흥이 겨워 박수를 치며 한 몸이 되어본다. 조금 있으니 붉은 두건을 나누어 준다.
말이 통하지 않아 몰랐지만, 마음에 드는 처녀에 두건을 씌워주며 술을 나누고, 중매인에게도 술을 나누어 주는 의식이 진행된다.
다음에 사랑하는 신부에게 선물을 주는데, 선물을 파는 사람이 한국 돈 2만원을 달라고 한다.
순간 나의 즐거웠던 분위기는 현실로 돌아서며 옆 사람의 눈치를 본다.

민속공연을 보기 전에 단원들과 모닥불을 피우면서 찍은 사진이다.(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얼떨결에 나의 신부를 떠나 물건을 파는 아가씨에게 그저 1000원을 주고 분위기를 보니 한국 돈 몇 천을 주면 될 것 같아 걸려있는 목걸이를 들고 신부에게 걸어주며 한국 돈 2000원을 주니 신부의 얼굴이 밝아진다. 기분 좋게 노신 형님아님은 100위안(13,000원 정도)를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어리버리해 하지는 못했지만, 붉은 띠로 신부를 업고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우리의 행사의 마무리였던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낭만적인 짝 직기의 방법인 것 같았다. 또한, 관광객의 주머니를 비게 하는 기발한 방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동서고금이 구애를 하는 방법은 가지가지이지만, 옛날로 돌아가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되어 사랑의 의식을 행하고 작은 징표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몇 푼의 돈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왠 일일까.

소수민족의 대나무 공연.(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중국인들의 관광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호텔에 들어와 야외 온천탕에서 온천을 했다.
연운항에서 올 때부터 룸메이트였던 민들레2와 수영복 차림에다 까운을 걸치고 호텔 뒤 쪽으로 올라가니 안내하는 중국 여자가 웃음으로 맞이한다.
넓은 수영장을 지나 오솔길을 올라가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야외 온천탕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보다 먼저 온 회장님과 형님아님이 와 있다. 까운을 옷걸이에 걸고 탕에 들어오니 순간에 피로가 풀리고 날아갈 것만 같다.
왼쪽의 나무와 오른쪽의 관목들이 조명에 분위기를 돋우고 밤하늘의 별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빨간 보자기를 쓴 신부들. 여기까지 전부 웃는 모습이었다. ^^(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물 속에 있는 몸은 따근따근, 물 밖에 있는 몸은 차갑지도 않은 남국의 솔바람과 숲 속의 분위기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있다.
머리 속은 ‘알퐁소 도테’의 단편소설 “별” 속의 목동처럼 꿈속을 헤메는 기분이랄까?
짧은 문장으로 그 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조금 있으니 주태백님의 부부팀이 왔다. 옆에 여자 노천탕이 있어 탕은 따로따로 갔다.
이쪽 물이 더 뜨겁다고 오라고 한다. 다음에 가을 낙엽이 왔다.

신랑. 신부가 정해지면 신부를 엎고 한바퀴를 도는데, 하는 방법을 몰라 업어주질 못했다.(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눌러주세요)
우리 남자들은 여자들은 보고 수영복도 입었는데, 혼탕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깜깜해서 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알아보기도 힘들다.

뒤에 들은 소리였지만, 일곱 여덟 명의 중국인 남자들이 들어 왔는데, 수영복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발가벗고 들어와 우리 남자팀들이 양보하고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고 했다. 결국에는 혼탕을 한 것이다. ^^
나도 끝까지 남아 있었더라면 혼탕을 할 수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