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워 ㄹ3일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여름에 내리는 비는 시원함을 느끼게 하지만,
가을에 내리는 비는 웬지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떨어진 낙엽 위에 내리는 비는 나무의 눈물인 것 같다.
몸이 말이 아니다.
이제서야 몸의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가 보다. 아침까지만 해도 힘이 없고 싸우나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견디다 보니 저녁까지 왔다.
배가 고프고 무언가 먹고 싶으니, 그래도 아직은 몸이 녹슬지 않았나 보다.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어진다.
어제도 먹었는데 말이다.
사무실에서 좀 떨어진 제주도 통돼지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다.
갸름한 모습의 종업원이 반갑게 맞아 준다. 자리에 방석도 없다. 벽의 메뉴를 보니 통돼지 생 삼겹살, 오겹살 두 가지만 있고 나머지는 해장국 외에 두서너 가지 음식에 술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색다른 술이 눈에 뜨인다.
삼겹살에 메밀한잔 이다.
“언니? 메밀한잔은 잔 술로 파는 건가요?”
“아니요? 병으로 나오는 것인데, 몇 잔 나와요?”
“그래요? 나는 메밀로 만든 술 한잔 인 줄 알았네?”
“술은 그것으로 주시고, 오겹살 1인분 주세요?”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미적미적 대며 말을 한다.
“1인분은 안되는데…,”
하고 주방에 물어 보더니 해준다고 한다.
메밀한잔 술병을 보니 소주병 크기이고 맛을 보니 곡주 맛이다.
약간의 누룩 맛도 나기도 하고 도수는 15도, 소주에 비하면 밋밋한 맛이라서 술 먹는 것 같지도 않다. 가격은 소주보다도 비싼 4,000원….
처음 들어오는 집이지만, 반찬이 14가지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음식점을 잘들어 온 것 같은데, 술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메밀한잔.
이름이 좋아서 너를 선택했지만,
애주가 들에게 길 들여지기에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될 것만 같다.
가을비 내리는 저녁,
메밀한잔과 멋진 데이트를 하려는 꿈이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달소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