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인도. 네팔 여행 14-15일 차(마지막 회)
일정: 오전 5시 40분경 문바이 도착. ( 어제 오후 6시 50분 아우랑가바드 역 출발) → 인도문 관광 및 인도 제일의 호텔 감상. → 엘리펀트 석굴 관광. → 나리만 포인트 자동차를 타고 관광 ( 밤에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 NANA NANI PARK 자동차 관광→ 간디 기념관 관람(오후 3:00 – 3:40) → 백화점 쇼핑 (오후 4 - 8시). → 문바이 해변 관광(오후 8 – 9시) →문바이 공항
새벽 5시 40분 경에 문바이 역에 도착했다. 역에 있는 2층 식당에서 아침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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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문을 배경으로. | 나는 남이 있는 햇반 2개와 캔 장조림 다른 사람에게 주고 인도 음식을 먹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햇반을 좋아하는데, 나는 데우지 않은 햇반은 생 쌀을 씹는 것 같아 맛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준비된 인도 음식은 두서너 가지 밖에 되지 않았다. 식탁의 음식을 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행주가 너무 더럽다. 색갈이 아주 흑색이다. 한국 같으면 손님이 들어왔다가 도로 나갔을 것이다. 앞에 앉은 일행이 얼굴이 말이 아니다. 며칠 째 설사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감기까지 들렸다고 한다. 그 사람은 네팔에서 봤을 때는 말도 많고 명랑해 보였는데, 지금 보니 완전 우거지상이다. 인도의 음식이 맞아서인 것 같다. 그에 비해 나는 햇반 대신 인도 음식을 찾아 먹을 정도이니 타고났다고나 할까? ^^
아침을 먹고 나니 8시 10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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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바이 항구의 타지마할 호텔. 문바이에서 특급호텔로 하루 숙박비가 수백불을 호가한다고 한다. |
버스를 타려고 역을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비가 와서 그런지 그렇게 덥지는 않다. 역의 좌측으로 돌아가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탔는데, 인원 파악을 해보니 한 사람이 안 보인다. 가이드를 포함해 모두들 긴장을 했다. 역에서 사람들이 많아 일행을 잃어버린 것이다. 가이드가 다시 역으로 나머지 한 사람을 찾아 왔지만, 단체생활에서 고문관 되는 것은 순간이다.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순간 우리 사람이 보이지 않아, 버스가 많이 서있는 버스 주차장으로 갔다고 했다.
문바이 시내를 들어서니 세계적인 도시답게 가로수도 잘 되어있고, 인도의 여느 도심에서 볼 수 있는 소나, 개, 염소들도 볼 수 없다. 오트릭샤 같은 것도 없고 택시나 승용차, 버스 만이 보이고 거리도 깨끗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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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판타섬 석굴의 조각상이 포르투갈 병사의 사격 표적이 되어 심하게 훼손이 되었다. |
아침 9시쯤 배를 타고 엘리판타섬에 들어가려고 하니 비가 그친다. 문방이의 우기는 하루에도 몇 번 씩 비가 왔다 그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세 번 씩이나 비가 퍼붓고 그쳤다.
인도문(Gateway of India) 엘리판타 섬의 선착장 옆에 위치하고 있는 1924년에 완성된 것으로 영국의 조지 5세가 인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지금은 인도에 들어오는 루트가 많지만, 당시 옛날에는 배로 문바이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가장 많아 인도문은 그 명성이 자자 했다고 한다.
타지마할 호텔. 인도의 민족자본가인 따따가 지은 호텔로 1898- 1903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건축 양식이 고풍스럽고 창문과 입구가 바다를 향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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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판타 섬에 있는 남근을 상징하는 시와링검. |
당시의 건축물들은 창문이 시내를 향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고 한다. 투숙비도 인도 최고의 수준으로 하루에 몇 백불을 호가하며 호텔 안에는 카페, 레스토랑 및 아케이드는 인도 최고 수준에 달한다고 한다. 이 호텔의 건설과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설립자인 따따가 그의 영국 친구와 함께 문바이에서 제일 좋은 아폴로 호텔에 식사를 하러 갔는데, 종업원이 그가 인도인이라는 것 만으로 못 들어가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분개한 따따는 아폴로호텔 보다 더 좋은 인도 최고의 호텔을 짓기로 결심하고 이 호텔을 세웠다는 것이다.
엘리판타 섬. 인도문 옆 선착장에서 엘리판타 섬으로 출발했다. 배에 타 2층으로 올라가 경치를 구경하려고 하는데, 10루피를 더 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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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판타섬의 석굴에서 |
한 사람이 위로 올라가니 너도나도 다 올라가 바다를 구경한다. 바다야 한국의 바다나 똑 같은 바다인데 그래도 인도양을 구경한다는 것은 기분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섬까지는 11Km 떨어져 있으니 40분 이상은 배를 탔던 것 같다. 이 석굴은 450-750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1534년 포르투갈 군인이 상륙한 뒤부터 엘리판타 섬으로 불리기 시작되었다 한다. 석굴은 힌두의 신들의 조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중에서도 부라흐마, 비쉬누, 쉬바 신의 조각상이 유명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조각들은 훼손이 되어있는데, 무지한 포르투갈 군인들이 사격의 표적으로 연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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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판타섬 석굴의 입구. |
엘리판타 섬을 관람하는 도중 원숭이에게 봉변을 당한 일이 발생했다. 먹다 말은 망고 주스를 손에 들고 가는데, 갑자기 원숭이가 가슴으로 달라붙어 주스를 가로 챈 일이 벌어졌다. 당한 사람은 놀라서 한 참을 서있는 것을 보았다. 점심을 먹을 때도 음식점에 원숭이가 내려와 우리들을 놀라게 했다. 인도인과 관광객을 원숭이가 구별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이 쫓으면 움직이지도 않고 인도인은 손 짓만해도 도망을 가니 말이다.
점심을 엘리판타 섬에서 먹고, 돌아가는 배인 오후 2시 경 배를 탔다. 배를 타고 오는 동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인도문에 도착하니 비가 조금 그친다. 대절 버스가 오지않아 타지마할 호텔의 처마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검은 차도르를 입은 처녀 두 사람이 보인다. 우리의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카메라를 들이대니 얼굴을 가리며 정색을 하며 찍지 말라고 한다. 힌두교를 믿는 여인과 달리 이슬람교를 믿는 여인들은 사진도 못찍게 할 정도로 폐쇄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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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판타섬을 나오면서 |
문바이라는 도시는 관광을 하기위해선 문제가 많은 도시라고 가이드는 말한다. 볼거리가 많은데 관광을 위한 배려는 하나도 되어있지 않다고 했다. 한 예로 관광지에 주차장시설이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대절 버스도 주차위반으로 하루 동안 3번 씩이나 딱지를 맞았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차 속에서 차를 타고 그저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만 했다. 고풍스런 문바이 역을 비롯해서 몇몇 유명 관공서의 건물도 차 속에서 봐야만 했다. 인도가 식민지 시절 ‘여왕을 목걸이’라고도 불렸던 마린 드라이브 해변 도로도 역시 차 속에서 봐야만 했다. 이 해변은 밤이 되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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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 최대의 도비가트. 빨래를 하는 곳이다. |
오후 3시 경 간디 기념관에 갔다.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 간디에 대한 모든 것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인도 최대의 빨래터인 도비가트를 철교 위의 도로에서 버스를 잠시 세워 놓고 구경을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빨래를 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이러한 빨래터는 세계에서 제일 클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한 곳을 볼 수가 없으나까…. 도비란 카스트의 한 계급으로 인도에서 빨래를 하는 하층계급을 별도로 만들어 일을 전담케 했다고 한다.
Patio 라는 레스토랑에서 인도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했다. 백화점내에 음식점도 마땅히 보이지 않아 문바이 구경도 하기 겸, 일행 한 사람과 함께 거리로 나서기로 했다. 길 가는 젊은 여인에게 레스토랑을 물으니 호텔이 많은 거리를 알려준다. 알려준 대로 길을 따라가니 레스토랑이 보이질 않는다. 한 30분 정도를 걸어 간신히 찾았는데, 7시부터 영업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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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기념관에서 간디 동상 옆에서. |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위의 대형 슈퍼에 들러 인도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염색약 헤나와 머리 염색약을 샀다. 한국에 비하면 1/3가격도 되지않는다. 시간에 맞추어 음식점에 들어갔다. 상의는 하얀 긴 팔에 검은 바지를 입은 웨이터들이 한 줄로 서서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Fish 와 Lamb 요리에 Steam Rice 를 시켰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질 않는다. 약속 시간이 있으니 빨리 갖다 달라고 하니 그제서야 나온다. 맛이 있었다. 보름 가까이 카레 음식에 맛을 들여서 인지 배부르게 먹었다. 밖에 나와 시계를 보니 8시 10분. 음식이 너무 늦게 나와 지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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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동상 옆에서 |
게다가 비까지 주룩주룩 내린다. 음식점에 들어올 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길 옆에 세워진 오토 릭샤를 잡아타니 음식점의 입구를 지키는 웨이터가 쫓아오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순간 그 백화점 이름이 기억에 나지 않고 가는 길 만 생각이 난다. 우리들은 웨이터와 운전기사에게 백화점은 모르고, 방향을 안다고 하니, 운전기사는 위치를 알아야 간다고 한다. 릭샤 안에서 약 5분간은 실갱이를 한 것 같다. 음식점의 주인인 듯한 사람까지 나와 위치가 어디냐고 묻는다. 자기들 생각에는 손님의 안전이 우려 되었나 보다. 나중에 나의 말을 이해 했는지 우리에게 음식점 명함을 주며 보낸다. 과도한 친절은 부담이 될 때도 있다. 어둡고 장대비를 속에서도 길을 찾기 쉽지만 않았지만, 다행히 가는 도중 아까 보았던 간판이 생각이 나서 헤매지 않고 백화점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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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본 인도문과 타지마할 호텔 |
아직 문바이 비행기 타는 시간까지는 많이 남아있다. 문바이 공항에 가는 것보다 문바이 해변에서 자유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해변을 둘러보니 술을 파는 곳이란 눈을 씻고 봐도 없고, 음식점만 수없이 많다. 검은 밤바다에 하얀 파도는 한국의 바닷가와 같이 아름답다. 비가 보슬보슬 오는 데도 젊은 남녀들이 많이 있다. 비가 그치자 해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를 거닌다. 까만 차도르를 입을 젊은 여자 두 명과 젊은 남자 세 명이 눈에 들어온다. 놀러 온 것 같은데, 한 젊은 남자가 차도르를 입은 여자를 순간 껴안다 놓는다. 여자의 차림새도 처음에는 얼굴을 내 놓았다가 나중에는 차도르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 놓는다. 타지마할 호텔에서 만난 이슬람교를 믿는 처녀와는 달리 바닷가에 온 이슬람 처녀는 상당히 자유 분망한 여자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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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기념관의 간디상 |
혼자 해변을 거닐고 있는데, 거리의 여자인 듯한 인도여인이 다가 온다. ‘How are you?”라고 인사를 하니 나보고 일본인 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호텔에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어디에나 ‘거리의 여인’은 있나 보다. 혹자는 인류가 결혼이라는 문화가 생긴 이래 홍등가는 존재했었다고 하니 말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인도에 와 있는 것 같지 않다.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발에서 꼬랑내가 나는 것 같다. 여행하면서 발냄새가 더 났을 것 같은데, 그 때는 맡지 못하고 지금은 냄새를 맡으니 아이로니컬하다. 화장실에 가 세면기에 발을 닦으려 하니 인도의 청소부가 쳐다본다. 팁을 주고 비누로 닦아도 발냄새가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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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판타 섬의 숲 |
비행기에 타자 피로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15. 인도. 네팔 여행 15일 차(8월 2일)
일정 : 새벽 3시경 비행기 탑승, 오후 3시경 인천 도착.
인도.네팔 여행은 내가 태어나서 가장 긴 여행을 한 거리이다.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인도의 문바이까지 아우라가바드 왕복 거리를 합하면 약 3,700Km의 거리는 될 것 같다. 인도. 미국, 중국, 러시아와 같이 땅 덩어리가 큰 나라가 아니면 여행을 할 수 없는 거리이다.
인천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차창에 지나가는 산과 나무와 건물들을 본다. 포근한 느낌이 든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먹을 것도 시원치 않고, 잠자리도 편치 않고, 사람들도 낯설어서 그런지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것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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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판타섬의 미완성 동굴 |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인도에 다녀 간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답니다.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무언지 모르게 끌리는 것이 있어 다시 오고 싶은 나라다”라는 말이…
나에게는 많은 느낌을 준 나라이고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나라 인 것 만은 틀림없다. 나중에 또 한 번 가고 싶은 생각이 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에는 한 번으로 족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15일 이란 많은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고, 다른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싶기 때문이다. (달소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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