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인도. 네팔 여행 11일 차(아그라의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에서)
일정 : 오전 6:00 타지마할→오전 10:00 아그라성(오전 10:30 –12:00까지 관람)→백화점 쇼핑(오후 1:30 –오후 5:00) → 아그라 역에서 오후 6:50 기차로 부사발행 출발
인도의 유적지 중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타지마할을 보기 위하여 아침 6시 경에 갔는데 관광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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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대 불가사의에 하나인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사진에 담겨져 있다. 일행 중에 사진 작가인 송계님이 찍은 사진을 퍼왔다. |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일찍 관광지를 간 적이 없는데 세계적인 관광지라서인지 새벽부터 사람들이 많은 것에 놀랐다.
어제 저녁에 타지마할의 뒤쪽을 보아서 규모는 짐작을 했지만, 정문으로 들어서는 길과 정방형의 연못과 타지마할의 황홀함은 뒤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하얀 대리석 돔은 아침, 오전, 오후, 저녁,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빛의 양에 따라 그 옷을 달리 갈아입는다고 한다.
인도를 상징하고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이 대리석 건물은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였던 샤 자한의 아내 뭄타즈의 무덤이다. 샤자한의 사랑을 받던 그녀가 출산 도중에 세상을 떠나자 충격을 받은 황제는 자기의 사랑을 화려한 무덤을 건설해 바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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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의 정면에 영국의 다이에나비가 앉아서 찍어 유명해진 의자에서 찍은 본인 사진이다. 여기서 찍었다는 다이애나 비의 포즈가 궁금하다. |
뭄타즈가 죽은 이듬해인 1632년 시작된 공사는 22년에 걸쳐 세워졌다. 기록에 의하면 총 공사비는 4,000,000Rs . 요즘의 환율로 계산하면 720억원에 정도가 되는 금액이라고 한다. 또 무덤 건설에 동원된 인원은 연간 20만 명, 1,000 마리의 코끼리 등이 사용되어졌다고 하니 황후의 무덤으로서 기록적이 아닐 수 없다.
이 건물 앞에는 짜르 박이라는 형식의 이슬람 정원이 있다. 정원을 수많은 정사각형으로 쪼갠 후, 사이사이 수로를 건설한 짜르 박 정원은 이슬람의 낙원 사상을 담고 있다. 즉, 타즈마할은 뭄타즈이 무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다시 세상에 돌아와 누릴 낙원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낮같이 환한 보름달이 뜬 밤, 이 정원의 연못 통해 수면에 반영된 타즈마할의 모습은 보는 이의 심장을 멈추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또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한여름철 아지랑이가 생겨날 때는 어른거리는 아지랑이를 통해 비추어지는 타즈마할의 모습은 천상의 몽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타지마할을 본 사람은 생각만 해도 충분히 환상적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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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돌의자 밑의 문양을 통해서 찍은 타지마할이 환상적이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좋다고 안내원이 말해주어 찍었는데, 대칭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
또 건물의 꼭대기는 돔으로 치장을 했으며 타즈마할 건물의 높이는 약 65미터. 거대한 중앙 돔을 사이에 두고 4개의 작은 돔이 있고, 네 끝에는 미나레트라고 부르는 철탑이 있어 대칭적인 아름다음을 한층 높여 주고 있다. 이 네 개의 첨탑은 중앙 건물의 바깥 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는데, 지진에 대비한 고려라고 한다.
타즈마할의 장식에는 모자이크이 일종인 피에트라 두라 기법이 사용됐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피에트라 두라는 대리석에 꽃 등이 문양을 판 뒤, 그 홈에 다른 색의 돌이나 보석을 박아 넣는 것으로 터키와 중국, 러시아에서 수입된 색색의 돌들이 순백의 대리석과 어우러져 오묘한 빛을 발한다. 이러한 기법에 의해 주로 표현된 것은 꽃과 나무이다. 이슬람 특성상 동물이나 신상등은 조각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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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뒷 쪽 아무나강을 건너편 검은 모래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염된 물이지만, 물에 비친 타지마할은 정결하다. |
타즈마할의 외벽을 장식한 문양 중에는 아라비아 글자도 있다. 대부분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서 발췌한 내용인데 ‘현재 세계가 멸망하고 심판의 날이 다가 오면 뭄타즈와 샤 자한이 부활할 것’이라는 예언적인 내용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타지마할 건축물에 대한 기록적인 측면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고 한다. 그 넓은 바닥을 장방형을 돌로 깔아 놓았는데,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어 하수구 관리에도 철저를 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거대한 타지마할을 건설한 샤 쟈한은 타지마할 아무나강의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또 다른 자기의 무덤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타지마할에 소요된 그 많은 재정 지출은 국민들의 원성을 사게 되고 급기야는 아들 아우랑제브 손에 의해 아그라 성에 유폐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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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을 뒤로하고 찍은 사진이다. 이른 아침이라 그래도 사람이 적은 편이라 사람 없이 찍을 수 있었다. |
우리 일행은 찬란한 세계문화유산인 타지마할을 뒤로 하고 또 하나의 인도의 걸작인 아그라 성으로 향했다.
아무나 강 옆의 타지마할과 같은 쪽, 멀지않은 곳에 아그라 성은 위치해 있다. 이성은 1566년 무굴의 제3대 황제였던 악바르가 지은 성이다. 강대한 무굴 제국을 상징이라도 하듯이 높이는 20여 미터, 둘레는 무려 2.5Km에 달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둘레에는 5미터 정도의 깊게 파놓은 해자를 만들어 놓아 전시에 적들이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악어와 뱀들을 풀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의 평화로운 시대로 인해 요새 역할은 못하고 건축광인 샤 자한 왕등으로 인해 궁전으로 변모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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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을 거의 다 관람하고 나올 때 쯤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람들이 금방 많아졌다. |
제항기르 팰리스 악바르 황제가 어렵게 얻은 아들인 살림(제항기르의 아명)을 위해 지은 검물인데, 힌두 양식과 아프가니스탄 약식의 건축기법이 혼합되어 묘한 아름다음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이다. 그러나 악바르와 제항기르 부자는 샤 자한과 아우랑제브 만큼이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부자간의 반목이 이어지게 된 이유는 무굴제국의 후계자 계승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굴 제국의 후계자 계승은 장남에 의해 평화로운 정권이양이 아니라 철저한 능력제로 결정되어 사병을 거느린 왕자간에 왕권을 향한 권력투쟁으로 무굴의 역사는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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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을 들어오는 입구의 문에서 찍은 사진이다. 입구의 문도 정교한 삼감 기법으로 처리되어있다. |
디와니암. 인도의 모든 성에는 다 있는 것으로 왕이 신하들을 만나는 공식 접견실이다. 1628년 샤 자한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초기의 목조 구조물을 붉은 사암으로 재건축한 뒤 다시 하얀 색으로 회칠을 해 다듬은 건물로 왕이 사무적인 일이나 건의 사항을 들을 때 사용했다. 건물 옆에는 나지나 마스지드, 혹은 젬 마스지드 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사원과 무굴 제국의 여인들이 애용했던 레이디스 바자르(여성전용 시장)가 있다. 이 시장은 남자는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었는데, 호기심 많은 악바르 황제는 여자로 분장해 자주 들렀다고 한다. 시장에서 별 일이 있겠냐 마는 옛날에는 왕이 여장을 하고 들렀을 정도로 여성전용시장에 대한 또 다른 무엇이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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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양 옆에 세워진 이슬람 사원. |
무삼만 버즈 ‘포로의 탑’이란 뜻을 가지 무삼마 버즈는 샤 자한이 1666년 숨을 거둘 때까지 마지막 8년을 보낸 곳이다. 사이가 좋지 못했던 샤 자한과 아우랑제브는 1658년 큰형인 다라 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병들고 늙은 아버지 샤 자한을 무삼만 버즈에 유폐 시킨다. 이 무삼만 버즈에서 샤 자한한 아내가 묻힌 타지마할은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지척에 두고 본인의 반 감금 생활을 당하며 서서히 죽어가야만 했다. 권력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느끼고, 병들고 나약한 이빨 빠진 호랑이 샤 자한이 멀리 보이는 사랑하는 부인의 묘를 바라봤을 처절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은 듯 많은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멀리 보이는 타지마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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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 성의 입구. 비스듬히 경사가 져있으며 전시에는 위에서 밑으로 돌을 굴려 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
아그라 성을 관람하다 보니 일행을 잃어 버렸다. 주변의 인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출구로 나와서 좌측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5분 정도 올라가니 아닌 것 같아 도로 아그라 성 출구로 돌아왔다. 다행이 가이드가 출구에 서있었다.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웠다. 무난히 관광버스에 올 수 있었다. 인도에서의 여행 시 일행을 잊어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acific Mall 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격은 110Rs, 인도의 백반인 Non chichen Tali 인데 가격도 싸고 분량도 많다. 우리의 이마트와 같은 곳이라서 먹거리 가격도 싼 것 같았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맥주 2병을 가지고 와 먹는 데 종업원이 무슨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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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둘레 2.5Km 되는 길이를 사진으로 가운데 검게 보이는 웅덩이(해자)를 파 놓아 악어나 뱀을 키워 성을 방어했다고 한다. |
술은 허가가 되어있지 곳이란 말을 했지만, 우리는 외국사람이니 못 알아들은 척하고 먹기로 했다. 술 병은 탁자 밑에 내려 놓고, 술을 담은 컵만 올려놓고 한 병은 다 먹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쇼핑 몰의 안전 요원인 듯 한 사람이 오더니 따라 놓은 술을 보고 “맥주” 아니냐고 묻는다. 우리는 못 알아들은 척 무조건 “NO, NO.”하고 외쳐댔다. 그리고, 탁자 위에 있는 컵의 맥주를 마시고, 밑에 숨겨 놓았던 술로 한 잔 두 잔을 채우고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안전요원이 맥주 병과 술 잔을 압수 해 간다. 그야말로 현행범이다. 꼼짝없이 “악” 소리 못하고 술을 빼았겼다. 더 이상 술을 먹을 수는 없어도 세 사람이 두 잔 씩 의 맥주 맛은 보았다.
먹을 수 없는 곳에서 먹는 술 맛은 스릴도 있고, 야릇한 쾌감까지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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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항기르 팰리스의 아름다운 모습. |
아직도 백화점에서 때울 시간이 많다. 아그라 역에서 부사발 행 기차가 6시 50분 경이니 말이다. 식사를 하고 2층을 거닐고 있는데 일곱 살 정도의 사내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말을 건넨다. 무어라고 말을 하는데, 쇼핑 몰 안이 시끄러워 알아들을 수 없다. 같이 걸어가며 그 소년이 게임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무슨 소리인지 알아차렸다. 그 소년이 “게임을 할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한국의 게임장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 각종 게임의 음향 때문에 나 같은 사람들은 혼이 빠지고, 아이들은 게임에 빠져 정신이 없는 것을 보니 인도에 온 것 같지가 않다. 게임장 안은 어린이들이 대부분이고 몇몇 30대의 젊은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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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 성의 왕의 접견소인 디와니암을 모습. |
쇼핑 몰 안에 있는 젊은이들은 인도 거리의 여자들과 차림새가 다르다. 인도의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은 사람들이 20-30%밖에 되지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여자들과 대동소이한 차림이다. 인도에서 살 만한 사람들은 아마도 인도의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지 않나 보다.
우리가 들어간 쇼핑 몰은 아그라에서 큰 곳인 것 같다. 영화관도 있는데, 입구에 가보니 대부분이 부인네들이 많다. 단체로 온 것 같은 10명 정도의 여인들은 전부 화려한 사리를 입고 있었으며 무슨 소리인지 쉴 사이 없이 수대를 떨고 있었다. 인도의 영화관도 가 볼 만 하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도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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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의 건설한 샤 자한이 아들 아우랑가바드에 의해 유폐생활을 했던 무삼만 버즈. 사진의 한 가운데에 보이는 아내의 묘인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했다. |
인도의 관객들은 영화 속의 일을 실제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장면에 따라 울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초등학교 때 “푸른 하늘 은하수”라는 영화를 보고 극장이 떠나가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60, 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
아직도 쇼핑 몰 안에서 1시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한 구석 공간에 못쓰는 탁자가 있어 걸터앉으니 돌아다니는 경비원이 걸터앉지 말라고 한다. 밖에 나가서 기다리자니 날씨기 더우니 죽으나 사나 에어콘이 팽팽 돌아가는 안에 있어야 한다. 일행과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이 말 저 말을 하다 보니 “인도 여인들이 왜 살이 찌는 이유가 뭐냐?” 는 이야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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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성의 내부에서. 장소는 어디인지 확실치 않다. |
정말 네팔과 인도의 부인네들은 대부분이 뒤룩뒤룩 살이 쪘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인도 사람들은 대부분 저녁을 9시 이후에 먹는답니다. 식 습관이 그러다 보니 살이 많이 찌지요.”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이유를 책에서 본 것 같다. 인도인들은 살이 찌는 것을 하나의 부의 상징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허긴 우리나라에도 과거에 배가 나온 것은 사장님 배라고 부러워 한 적이 있으니 이해가 갈만도 하다. 이 말을 듣고 일행이 한 마디 한다. 우리 시골에서도 배를 노출시키며 찬바람을 쏘이게 되면 살이 찐다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이곳 인도에서는 찬바람이 불리가 없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시간 죽이기 위해 하는 소리이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동의를 해 주었다. 여긴 인도이기도 하니까…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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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 성의 위용. |
정말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먹는 시간 40여분 정도 의자에 앉아 있었고, 무려 4시간 반을 쇼핑 몰 안에서 여기저기 헤매었으니 말이다.
쇼핑 몰 앞에서 대절 버스를 타고 아그라 역으로 갔다. 대합실에서 또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만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다.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의자에 앉아 자고 있는 사람의 복대에 있는 물병을 살짝 꺼낸다. 그래도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무척 피곤 했나 보다. 앞에서 보고 있던 검은 사리를 입은 인도인 부인이 그것을 보고 빙그레 웃는다. 그 옆의 같이 있는 꼬마아이도 싱긋 웃는다. 말은 안 하지만 대합실에서 보고 있는 여러 사람은 자고 있던 사람이 깨면 '어떻게 행동 할지...' 하는 생각에 잠시 동안 기다림의 무료함을 잊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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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 성을 나오면서. |
조금 전의 장난은 이어진다. 계속 자고 있으니 이번에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망고를 슬쩍 빼았는데도 알아채지 못한다. 계속 자고 있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내가 옆에서 말을 붙였다. 그제서야 잠을 깨고 물통을 찾는다. 두리 번 거리더니 장난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는 듯이 물통을 달라고 한다. 나중에 “그렇게 세상 모르고 자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은 했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큰 일 날 번 했을 것 같다. 오른 손에 쥐었던 망고는 기억도 하지 못했다.
대합실은 에어컨과 선풍기가 돌아가지만 시원치 않다. 어렴풋이 기다리면서 화장실 옆의 샤워실에서 샤워를 했던 기억이 난다. 미적지근한 물로 샤워를 해서 그런지 샤워할 때 잠깐 더위를 잊을 뿐이고 여전히 덥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부사발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