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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째 인도.네팔여행(자이쁘르,알베르성,핑크시티,2007.7.27.)

달소래 2011. 10. 16. 22:56
 

9. 인도. 네팔 여행 9일 차(자이쁘르.알베르성,핑크시티 에서)

일정 : 아침 4.30분 기상 6시 30분에 자이쁘르로 버스대절로 출발. → 12:30분 암베르성 도착 1시 30분 까지 관람. 관람료 50루피, → 중식 후 시티팔레스(관람료 180루피) 와 천문대(관람료 10루피, 사진 50루피) 관광, 하와 마할(바람의 궁전) 관람.

어둑어둑한 새벽에 일어났다. 새벽 6시 30분이면 한국에선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다. 대절한 버스에 몸을 실으니 이국의 풍경을 감상할 시간도 없다. 어제 잠을 못 잦던 지라 버스에 오르자 십분도 되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이동 중에 잠깐 시장에 들러 물을 샀다. 외국인을 자주 못 본 듯 구경을 한다.
델리에서 자이쁘르로 가는 도로는 인도에서 고속도로라고 하는 도로다. 정신 없이 자는 나의 고개를 떨구게 한 것이 있다. 갑작스레 브레이크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 때문에 급 브레이크를 잡다 보니 차가 쏠린 것이다.
한마디로 인도인 가이드는 고속도로 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에는 고속도로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국도라고 할 수 있으려나? 도로의 능률로 따진다면 국도 수준도 못 할 것 같다.
인도의 고속도로라는 것은 지방도로 상가와도 연결이 되어 사람도 왕래하고 인도의 여느 도로와 마찬가지로 자전거, 오토바이, 또 갓 길에 트랙터나 우마차의 역주행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고속도로. 실제는 우리의 국도보다 정리가 되어있질 않고, 일반도로와 연결되어 있어 우마차, 사장, 짐승들도 다닌다.
실제로 델리에서 자이쁘르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가이드가 이야기한 말을 설마 했지만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갓 길을 낙타가 끄는 구르마와 트렉터가 역주행하는 것을 보았고, 길을 건너가는 사람과 자전거는 말할 것도 없고, 시내를 통과하는 고속도로에서는 유유자적하게 걸어가는 소를 우리 관광버스가 피해가는 현장을 목격했다.
또 하나 우리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우리가 타고 가는 버스가 갑자기 밀리자 운전기사는 상대편에서 오고 있는 차선으로 역주행을 하는 것이다. 순간 아찔했으나 가이드 말이 주경계에서는 화물차의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밀릴 수 있어 흔히 역주행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고속도로 설계 시부터 톨게이트를 만들어 정체를 해결하지만 인도의 행정 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못 했는지….

 

시장에서 바나나를 파는 상인. 부유층과는 달리 깡 말라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방송에서 신문에서 연일 톱뉴스감이 될 사건이 인도에서는 그것도 하나의 질서인 듯이 평온하게 지켜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한심하기도 했다.

어제 점심에 델리에서 세계적인 회사 맥도널드에서 먹은 아이스티가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연일 더위에 더위를 먹었는지 아침에 버스를 타고부터 배가 살살 아프고 뭔가 심상치가 않다.
급기야는 델리 출발 세시간 쯤이 되었을까?
자연 화장실을 주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소변을 보는데 나는 대변을 봐야 할 것 같다. 일행에 좀 늦을 것이라고 말을 하고 차 뒤 편 좀 떨어진 곳으로 뛰어갔다.

 

자이쁘르 시내의 낙타 마차. 보지 못한 것이라 신기하기까지 하다.
키 만한 나무가 있고, 10센티 정도 크기의 이름 모를 한가지 풀들로 무성한 평평한 곳이 보인다. 풀들이 바람이 한들거리며 포근한 풀밭이다. 발로 밟으니 눌린 풀로 발자국을 남긴다. 변을 볼 장소이기에는 너무도 깨끗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는 인도 이니까… 후후후
풀이 우거져 뱀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운명에 맡기자. 몇 초도 안되어 후련히 일을 마쳤는데, 휴지를 쓰기도 전에 어느새 냄새를 맡고 달려온 파리 한 마리가 시식을 하고 있다. ^^
“나는 지금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한 싸이클의 일부를 수행하고 있는 거야…”
인도 이기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자이쁘르 암베르성을 뒤로하고. 뒤에 고성이 보인다.

한 시인이 쓴 인도 여행기에서 읽은 한 구절이 떠오른다.
허허 벌판에서 가고 있는 시골 버스를 세워 놓고, 버스에 타고 있는 인도인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조그마한 나무를 은폐 삼아 일을 보곤 태연한 듯이 돌맹이 하나를 집어 던지고서 여유를 가졌다는 발가벗겨진 한 문명인의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을 가져 본다.
나야 배설의 쾌감을 후련하게 느꼈지만, 일행들에게는 미안한 순간이기도 했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고속도로 휴게실이라는 곳에 내렸다.
그런데, 고속도로 휴게실이 차량 주차장보다 정원과 조경 시설이 더 넓다. 나중에 나가면서 간판을 보니 리조트다. 인도에서는 아직 고속도로 휴게실 문화가 정착이 되어 있지 않고, 몇몇 자가용을 가지고 다니는 특수 계층에게 리조트 겸용으로 이용하고 있나 보다.

 

산위의 암베르성. 인도의 만리장성이라고 할 정도로 산 위에 길게 성을 쌓아 놓았다.

지금까지 이동 할 때에는 야간에 기차로 이동을 했기 때문에 창 밖의 경치를 볼 수 없었지만, 델리에서 자이쁘르 알베르 성까지 오는 길의 풍경은 이전과 다르다. 이전의 산도 없이 끝없이 펼쳐지는 평지와는 달리 100- 200미터의 산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비가 안 와서 그런지 산에 나무가 없고 황폐해 보였다. 이 산은 델리에서부터 시작이 되는데, 아라왈리 산맥이라고 한다.
이 산등성이에 인도의 만리장성이라고 하는 알베르성이 있다.

알베르성 관람. (12시 30분 도착 1시 30분까지 관람. 50Rs)
자이쁘르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구릉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암베르는 1037-1726년 까지 카츠츠와하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다.
암베르성은 무굴황제 악바르와의 혼인 동맹을 통해 왕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만 싱 왕이 건설했다.

 

암베르성 내부에서.
암베르 성은 라지푸트 최고의 재력을 자랑하던 카츠츠와하 왕조의 작품답게 화려하고 아름답다. 심지어 종주국이었던 무굴의 황제 제항기르가 암베르 성을 방문했을 때, 일부러 디와니암의 장식을 덧칠하고, 본 모습을 감춰야 했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올 정도다.
성 입구로 들어서면 정면에 매표소, 왼쪽에 디와니암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왕의 접견장으로 다른 아그라성과 붉은성과 크게 다르지않다.
디와니암을 지나면 가네쉬 폴이라는 3층짜리 건물이 나온다 1640년 지어진 이 건물은 Pole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왕의 개인 거처로 연결되는 문, 즉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나누는 문인 셈이다.
이어 정원이 나오는데, 아람 박 이라 부르는 왕의 개인 정원이다. 기하학적인 수로가 특징이며, 아람 박에서 바라보는 석양 무렵의 가네쉬 폴이 특히 아름답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오전이라 볼 수 없었다.

 

암베르성이 놀러 온 연인들과 우리 일행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아람 박의 양쪽 끝에는 각각 쉬시 마할(궁전 이란 뜻)과 수크 니와스가 있다. 암베르성의 핵심 볼거리 중 하나인 쉬시 마할은 방 천체를 거울 모자이크로 꾸며, 촛불 하나 만으로도 방 전체를 환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남아 있는 거울 모자이크를 보며 당시를 상상해볼 수 있지만, 야간 개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실험조차 해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쉬스 마할의 2층에는 왕의 개인 접견실로 쓰이던 자스 만디르가 있다. 대리석 창을 총해 성 바깥을 조망할 수 있는데, 맑은 날이라면 제법 훌륭한 경치도 감상할 수 있다.

알베르성 입구에 내리면 정부에서 운영하는 코끼리를 타고 성에 올라갈 수도 있고, 개인인 운영하는 자동차를 타고 갈 수도 있는데, 코끼리는 단체 손님이 벌써 타고 가 우리는 일부 자동차를 타고 갔고, 가이드를 포함한 일부 몇 사람은 걸어서 갔다. 그런데, 올라와서 보니 걸어 온 사람이나 차를 타고 온 사람이나 똑 같이 도착했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이다.

 

핑크시티를 배경으로. 뒤에 핑크시티의 위용이 보인다.

입구에서부터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다.
썬그라스를 쓰니 좀 편한 거 같다. 구걸하는 아이들이 좀 덜 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이 얼굴을 보면, 다시 말해 눈을 보면 계속적으로 끈질기게 구걸을 해 가엽다는 생각은 어느새 신경질이 날 지경으로 구걸을 한다.
문득 한 테레비 프로가 생각난다. 원숭이에 얼굴을 쳐다보면 그 원숭이는 자기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사람에게 달려든다는 프로다. 어쩌면 똑 같은 논리인지도 모른다. 구걸하거나 기념품을 파는 사람을 얼굴을 보면 십중팔구 더 달려들고,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구걸하거나 물건을 팔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도 동물을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사진을 찍어주고 몇 푼의 돈을 받는 인도복 정장을 한 인도인. 나는 같이 사진을 찍지 않았다.

알베르 성을 보고 밑에 내려와 좋다고 하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찌는 듯한 더위이다. 섭씨 32 – 33도는 될 것 같다. 가이드에게 덥다고 했더니 2-3주 전만 해도 섭씨 42-43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였고 지금은 시원한 편이라고 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길을 도로를 건너는데, 건너편에 보도 위에 대여섯개의 남색 비니루로 친 허름한 삼각 텐트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안에는 사람이 없고 밖에 한 두 사람이 나와 있는데, 거주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맞은 편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식사를 하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

시티 팔레스 관람. (관람료 : 180Rs)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시티 팔레스를 구경했다.

 

핑크 시티를 보고나서 천무대에서 찍은 사진이다. 멀리 핑크시티의 건물이 보인다.
자이싱 2세가 지은 궁전으로 자이쁘르 시내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다. 궁전 안은 마하라자(위대한 왕이란 뜻)가 살고 있는 구역과 박물관의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방문객의 경우에는 박물관을 포함한 일부 구역의 입장만 허용된다.
박물관에는 역대 왕이 사용했던 화려한 일상용품은 물론 왕가에서 수집한 무굴을 세밀화들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밖의 정원에서 라젠드리 게이트로 들어가면 왕의 공식 및 개인 접견실인 디와니암과 디와니카스가 나온다. 그중 디와니카스 앞에 있는 은 항아리는 영국 왕세자였던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배를 타야 했던 마호 싱 2세가 갠지스 강물을 담아가는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갠지스 강물을 퍼 가야만 했던 이유는 바다를 건너면 자신의 지위(카스트)를 잃는다는 힌두교인의 믿음 때문이다.

 

 

핑크시티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물을 담는 은항아리.
참고로 이 은 항아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은제품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잔다르 만타르(천문대)(관람료 : 50Rs)
건축, 천문학, 의학 등 다양한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자이싱 2세가 세운 천문대이다. 인도에는 여러 곳에 천문대가 세워졌는데, 이곳 자이쁘르에 있는 찬문대가 제일 큰 것으로 총 18개의 천문대와 적도 시계, 해시계들이 있다. 천문대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도 실제 천체 관측이 실시 됐을 정도로 정확도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천체를 감상할 수 있는 밤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기 때문에 그 진가는 확인해볼 수가 없다. 다만 낮에 방문해 외관을 확인하는 것 정도가 최선이다. 최근까지도 천체 관측을 했다는 것은 자랑하기 위한 것으로 어쩌면 중국인에 버금가는 허풍인지도 모른다.

 

천문대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래도 무엇인가 알 것 만 같은 곳이다. 인도의 성은 그 역사를 잘 모르니 그것이 그것인 것 같으니 말이다.

하와 마할(바람의 궁전)
일명 바람의 궁전이라고도 하는 이 궁전은 1799년에 지어진 건물로 바깥 출입이 제한된 왕가의 여인들이 하와 마할 창가에 서서 시가지를 구경했다고 전해져 당대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대변하는 장소로 꼽힌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수리 중이었기 때문에 길가에서만 보고 올라가 서민들의 삶을 보지는 못했다.

가이드는 시티 팔레스를 관광하고 시장을 구경하고 5시 반까지 모이기로 했다. 시티팰리스 앞의 시장은 양 옆이 전부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옛날 건물이다. 한마디로 시장도 고색이 창연하다.
시장 구경을 하다 돌아오면서 물건 구경을 하다 보니 갑자기 일행은 보이지 않고 혼자 남았다. 모이는 장소로 찾아가려고 하니 길이 낯설다. 두리번거리다가 일행 한 사람을 만났다. 반가웠다. 그 사람도 길을 잊어 찾고 있던 중이었던 것 같았다. 거리의 인도인에게 물어보니 한참을 지나쳐 왔다. 가까스로 우리가 타고 온 버스를 찾아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우리 보다 더 늦게 온 사람이 있어 눈총을 받지 않았다.

 

자이쁘르 바람의 궁전. 왕족의 여자들이 밖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창으로 시장을 구경했다고 한다. 시티패리스를 나와 시내를 가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을 하여 도착한 곳은 Hotel Gold.
호텔 입구를 들어서니 환영하는 북 소리와 호텔 종업원이 인도의 꽃을 목에 걸어준다. 네팔의 포카라 호텔 이후 두 번째의 꽃다발 환영이다. 조금 있으니 주스도 한 컵씩 준다. 오늘 아침 4시 반부터 지금까지 관광했던 피곤함이 일시에 가신다.

방 배치를 받고 간단한 샤워를 하고 저녁 현지식을 하려고 호텔 로비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룸메이트는 아직도 감기가 낫지 않은 듯 서울에서 가지고 온 음식으로 저녁을 때운다고 한다. 나가서 저녁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아까부터 인도의 전통 악기 인 듯한 현악기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열두서너살의 남자 아이가 우리들 앞으로 온다.

 

우리 일행 중에 한 사람이 호털로비에서 춤을 추는 소년과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와 같이 찍은 사진이다.
빨간 옷에 가장자리 10cm 정도 노란 줄로 꿰맨 원피스 같은 것을 입고 춤을 추는데, 빙빙 돌 때마다 치마폭이 동그랗게 원을 이루는 것이 인상적이다. 눈썹을 움직이기도 하고, 빙빙 돌기도 하고, 코프라처럼 목을 쭉 빼고 좌우로 움직이기도 하면서 우리에겐 보지못한 스텝이지만, 그들에겐 익숙한 고유의 스텝인 듯 능수능란하게 움직인다. 발목에는 방울 달린 링을 해 발을 구르고 스텝을 밟을 때마다 방울 소리와 현악기의 조화가 어색하지 않다.
계속 우리 앞에서 춤을 추어 보기에도 민망해 우리들은 가지고 있는 몇 푼의 돈을 팁으로 주었다. 그러자 그 소년은 다른 옆 좌석의 인도인 한테로 가 춤을 한참을 추더니 팁이 나오지 않자 다른 곳으로 갔다. 역시 한국인은 정에 약한가 보다.

로비에서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 마침 가이드 싼토스를 만나 호텔 앞의 음식점에 갔다. 한 너댓개의 가게가 붙어 있었다.

 

자이쁘르 시내의 전경. 건물들이 고풍스러운 옛날의 건물들인데, 지금도 장사하는 데 지장이 없다.
음식점과 잡화, 술과 음료수를 파는 가게다. 산토스를 포함 네명을 남자들이 술을 하고 있는데, 여자 일행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린 영계 희정님이 온다. 병맥주 8병을 먹었다. 안주로는 계란 데친 것. 가격은 호주 수입산이 한병에 70루피, 인도산이 50루피, 인도에서는 처음으로 호텔 밖에서 먹어보는 맥주이다. 가격도 호텔 보다는 배는 싼 것 같았다. 룸비니 호텔에서는 맥주 하나에 160루피를 주었으니…

자이쁘르에 있는 Hotel Gold는 시내에서는 좀 떨어져 있지만, 지금까지 투숙했던 호텔 중에 조경과 시설이 제일 좋은 것 같았다. 호텔에 도착해 수영장이 있다는 소리에 몇몇 사람들은 곧바로 수영장으로 가서 놀기도 했다. 잘 가꾸어 놓은 잔디밭과 앞에 보이는 산과 바위, 헬쓰크럽, 싸이클 트랙과 조깅장은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호텔 부속시설 인 것 같았다.
술 한 잔 먹고 들어오는 호텔의 멋진 야경은 낮에 보는 것과 또 다른 운치가 있었다.
(2007. 7. 27. 달소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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