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판/사는 이야기

추억의 군시절(어머님의 면회)

달소래 2010. 12. 13. 13:06

잡지 향군 저널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 회원들 중에서 아들을 군에 보낸다는 회원이 있어 전에 올렸던 글을 찾아 올립니다.

(앞줄 맨 좌측이 본인이다. 이때만 해도 팽팽한 얼굴였는데.....   ^^ )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표현을 할까...

남자인 내가 그 마음을 어느정도 알지 모르겠지만,

군에 보낸 자식 걱정을 하는 어머니의 글을 보고 나의 군대생활이 생각나 몇 자 적습니다. 

 

며칠전 일이 있어 대구에 갔다가 나의 젊은 3년의 청춘을 묻었던 최정산 싸이트(방공포대)를 가봤지요. 제대할 땐 민간인 복장을 하고 꼭 부대를 한번 찾아 가본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서야 간다 생각하니 조금은 설레는 마음이 들었지요.

 

그 옛날 눈이 오면 아침부터 눈을 치우느라 설상화 발바닥의 땀은 물이 되어 철떡이고, 얼굴은 한 여름처럼 땀 범벅이 되었던 900여 고지의 최정산 길,

꼬부랑 꼬부랑 구비구비 털털 거리는 비포장 자동차 길은 지금은 평탄한 아스팔트가 되었지만, 하루 세끼 때가 되면 배가 고파, 그것도 빨리 밥을 먹으려고 700여 고지에 있는 중턱의 행정지역까지 열을 맞춰 구보로 내려왔던 길,

배를 채우고 올라갈 때는 대열을 맞춰 군가를 부르며 걸어갔던 그 길,

한겨울 하얀 눈쌓인 행정지역 연병장에서 점심먹으러 왔다가 기합받던 빡세던 식당군기.

그런데, 배만 고프지 않았다면 내려오기 싫었전 식당과 행정지역은 없어진지 오래 된 것같았습니다.

그곳에는 목장 비슷한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내가 근무하던 정상의 싸이트(방공포대)는 정문도 폐쇄되었고, 울타리도 이름 모를 덩쿨풀로 둘러쌓여 흉물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또 당시에 정문 앞 헬기장은 KT통신소가 들어서 있어 30 여년 전의 세월의 흐름을 절감했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지요.

어느 토요일 아침, 여기저기 청소와 내무반 정리정돈 등 할일에 이리뛰고 저리뛰고 있었던 강일병.

부대입구 산밑의 가창 일동에서 부모님이 면회를 왔다는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비누칠로 얼굴을 광내고, 다려놓은 외출복을 차려입고 오후에 내려가는 영외자 퇴근차에 몸을 실었지요.

군에 간 아들을 보며 반가우셨겠지만, 별로 말이 없으시고 얼굴만 빤히 바라 보았던 부모님.

그 날,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제과점 빵이 실컷 먹고 싶다고 하자 빵집에 갔지요.

아마도 열개는 더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을 보고 어머니 하신 말씀이 

"그렇게도 빵이 맛이 있니?"

 

나중에 누님한테 들은 소리가 있습니다.

나를 면회하고 집에 돌아오신 어머님 하신 말씀이

"네 동생 고생 많이 하는 것 같더라. 손등이 다 터지고..."

하시면서 말끝을 다 이어가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말....

하긴 부모님을 보려고 싸이트를 내려오던 날 터진 손들을 닦아내려고 따뜻한 물에 많이도 씻었는데...

어머니의 눈은 피할 수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우리 시절 군생활, 나 말고도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지요....

지금도 가끔 군대생활 이야기가 나오면 어머님의 면회 왔던 생각이 나고, 어머니의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 옴을 느낍니다.

요사이 군생활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겠지요.

(달소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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