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판/사는 이야기

추석날의 막걸리

달소래 2009. 3. 10. 13:49

    2003년 9일 16일
    이번 추석은 우울한 추석인 것만 같다. 추석 전에부터 강력한 태풍을 예고하더니 즐거워야 할 추석은 먹구름 속의 하얀 달님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풍요로운 얼굴은 고사하고, 태풍에 얻어맞아 찌그러진 얼굴도 며칠 만에 보였으니 말이다. 추석날 차례를 지내고 부랴부랴 시골에 내려가 다행이 밀리지는 않았다. 올해 구정에 보고 지금 보는 산소, 친척들이 벌써 왔다 갔는지... 꺼꾸로 세워져 타다말은 담배 꽁초에 절을 끝내고 짐짓 동생에게 말을 붙여본다. "아버진 담배를 좋아 하셨지?" "넌 담배 좀 끝어야지??" 담배는 간에도 좋지 않다는 줄을 알면서, 건강이 좋지 않으신 후에야 담배를 끊으셨는데, 모르는 친척이 담배를 놓았으니 돌아가산 아버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동생집에 도착하니 저녁 때가 되었다. 매제도 온다하니 졸지에 남자들이 넷이다. 추석날 오손도손 모여 하는 사는 이야기...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는 단연 옛날 어릴 때의 이야기다. 좌중이 얼큰하게 오르자 동생이 한마디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학교에 다닐 때, 떡전 골목의 막걸리 맛은 잊을 수가 없어요" "값도 싸고 감칠 맛이 끝내줘요?" 그러자 "그럼, 오늘 한 번 가볼까? 그 집은 추석날에도 할꺼야..."하며 둘째가 거든다. 이렇게 하여 우리 삼형제와 매제는 추석날의 막걸리를 먹으로 일어섰다. 나는 와 보지는 않았지만, 들어서니 허름한 것이 20년 전이나 그대로 인 것 같았다. 동생이야기도 옛날과 똑 같단다. 주모도 아마 육십은 훨씬 넘어 보이는 것이 칠십나이를 바라다 보는 듯이 보인다. 우선 막걸리 두병을 시켰다. 그런데, 종류가 다른 것이 나온다. 똑 같은 것으로 달라고 하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을 도로 가지고 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있는 것만 먹어..." 네명이서 막걸리 한병만 먹으라니, 하는 수없이 우리는 다른 종류의 막걸리라도 달라고 했다. 후에 안 이야기지만 이집은 손님이 주인이 아니라 주모가 주고 싶으면 주는 곳이며, 그 다른 술은 더 좋은 술이라 맛 보라고 내놓은 술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안주를 시키고 싶었지만 계란막기 밖에 없다고 했서 시켰는데, 분량이 아마도 서울의 두배는 너끈히 되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논산에서 근무하는 직원까지 합세해서 작은 '회사 추석모임'이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푸근한 시골 인심과 무뚝뚝한 주모로부터 느껴지는 풋풋한 정은 다시금 고향을 찾게하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추석이 지난 지금, 돌아 본 추석날 하루, 술에 취해 어떻게 집에 들어온 지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태풍에 피해를 입은 사람을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 몇년 전에 수해로 받은 구호품이 지금도 남아 있기때문이다. 아무쪼록 빨리 태풍의 상처를 극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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