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판/사는 이야기

추억의 골목길.

달소래 2009. 11. 3. 17:09

 


사우나의 힘이 대단하다.
어제 먹은 삼차에 걸친 술을 먹고 잘 때까지만 해도 힘들 것 같은 오늘이 이렇게 거뜬하고 기분까지 좋으니 말이다.

지난 토요일, 강경에 계신 사촌형님이 돌아가셔서 문상을 하고 올라오기도 뭐해, 친구 한 사람에게 전화를 하니 마침 초등학교 동창들 세명이 고스톱을 치고있다고 해서 일차 네명이서 술을 먹다가 두명은 가고 둘이서 삼차까지 먹은 술이다. 
찜질 방에서 느지감치 일어나 해장국으로 조개된장국을 먹으니 속이 풀린다.

어제 논산감리교회 앞에 차를 파킹해 놓았으니 걸어가는 길에 반월동 옛날 살던 집을 찾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오거리 지하도를 지나 첫째 길에서 우회전을 하였다.
그 옛날에도 있었던 교회를 지나 집 근처를 갔지만, 들어가는 길이 없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골목길로 살던 집을 찾을 수 있었는데, 확 달라졌다.

갑자기 꼭 찾아서 어떻게 변했는지 알고 싶은 오기가 생긴다.
옛날 동성초등학교 정문 자리를 가보니 그 옛날 문방구를 팔고 과자를 팔던 집이 보인다.
사람이 살고 있지않을 것 같은 먼지가 뽀얗고 퇴색된 지붕과 맞다은 담벼락은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그 옆 건물을 끼고 좌회전하여 동성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동성말랭이로 가는 골목길로 옛날 우리 살던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골목길을 들어서니 그 옛날 어떻게 이런 집들에서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의 아파트와 빌딩 숲을 보다 골목길을 들어서니 마치 외국의 빈민굴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꾸불꾸불한 골목길과 몇몇 집들의 부식되고 틈이 벌어진 세멘트 담벼락은 수십 년의 비바람을 견디어 왔다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군데군데 있는 치지않은 쓰레기는 영화에서 보듯 금방이라도 불량배가 앞을 가로막을 것 같아 순간 무서운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옛날을 회상하며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니 분명 길이 있어야 할 곳인데, 담벼락으로 길이 막혀있다.

‘조금만 가면 우리집의 나오는데….’
다시 길을 나와 또 다른 골목길로 들어가 보았으니 역시 막다른 길이다. 옛날 동성초등학교 블록을 두 번이나 돌았으나 끝내 찾지를 못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옛날 살던 집을 보았던 것 같은데….. ‘
논산에 자주 내려오지도 못하지만, 나의 유년시절을 회상할 만한 공간을 찾아 볼 수 없으니 씁쓸하기만 하다.

‘추억의 골목길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옛날 초등학교에 다닐 때다. 가로등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두운 골목길에 담요를 뒤집어 쓰고 두서너 명이 쭈그리고 앉아 지나가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생각이 난다.
한 여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높아 시원했던 철로의 침목에 걸터앉아 어른들의 귀신이나 도깨비 이야기를 들으며 몇 미터 떨어진 집까지 가는 것이 무서웠던 시절이며, 늦게 까지 어두운 골목길 여기저기에 숨어 술래잡기를 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했던 여자아이와 같이 숨기를 바랬던 조금은 조숙했던 추억이 생각난다.

문득, 그 때 같이 뛰어 놀던 아이들을 지금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들 흰머리가 히끗히끗 보이고 이마엔 세월의 주름도 생겨났겠지만, 그 때의 추억을 말하면 조금은 젊어지지 않을까……
지금은 성만 기억이 나고 이름도 잊었지만, 당시 좋아했던 여자아이를 만난다면 아마도 한 이십년은 젊어질 수 있을 것 같다. ^^

 

2007년 2월 11일 달소래 씀.


'계시판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버린 여인.  (0) 2010.01.12
봄비에 젖고 싶었는데...  (0) 2009.11.25
노숙자의 점심.  (0) 2009.11.03
술좌석의 불만.  (0) 2009.11.03
감추고 싶었던 눈물.  (0) 2009.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