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판/사는 이야기

하모니카의 추억

달소래 2009. 10. 7. 00:45

 

며칠 전이다.
영등포에 술 먹을 약속이 있어 버스에 타고 가는 중이었다. 태양의 집 정류장 쯤에선가? 초등학생 1-2학년이 되는 어린이가 탄다.
순간 귀엽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 아이가 가까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어린 아이가 좋아졌다. 이삼십대 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이가 좋아진 것 같다.

며칠 전 길거리에서 댓살 먹은 손녀의 손을 잡고 가는 할아버지(단지 손녀를 봤으니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임)의 모습이 너무도 좋아 보여 내가 꼬마아이의 손을 대신 잡고 싶은 충동까지 느낀 적이 있었다.
‘내가 손자, 손녀를 볼 나이가 되어서 그런가?’
‘허긴 옛날 같으면 손자를 볼 나이가 지났기도 했지만....’
혼자 생각하며 내 옆 자리가 비어, 남자 아이를 앉히고 물었다.
‘지금 어디 갔다 오니?’
“학원에 갔다 와요‘
“학원에서 무엇을 배우니?”
“하모니카를 배워요”
“하모니카를 배우는 학원도 있니?”
피아노나 바이오린 등을 배우는 학원은 많이 들어봤어도 하모니카를 배운다는 말을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요사인 하모니카를 보기에도 쉽지 않고 더욱이 그것을 배운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모니카 좀 보여줄 수 있니?”
“저기 누나 하모니카가 더 좋아요” 하며 두자리 앞에 앉아 있는 자기보다 한 학년이 높다는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여자아이를 가리킨다.
“아저씨도 어렸을 때, 너보다 큰 중학교 때 하모니카를 잘 불었단다. 그저 혼자 불어도 되는데, 학원까지 다닐 필요가 있니?”

아이가 금방 버스에서 내려 하모니카를 보지는 못했다,
내 생각하기에 ‘보통 하모니카가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요즈음은 학원 만능시대인 것 같았다.
우리 시대에는 그저 장난감 같이 가지고 놀았던 하모니카도 이제는 학원에서 배우는 시대가 되었나 보다.

옛날 중학교 다닐 때, 누님과 자취할 때 생각이 난다.
저녁 먹은 후 어둑어둑 해지면, 떠나온 집 생각을 하며, 자취방 마루에 걸터앉아 하모니카를 불었던 기억이 난다. 즐겨 불었던 곡은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 .......”라는 곡이다.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나 집에 가고 싶을 때 하모니카를 불었던 기억이 난다. 일주일 중에 토요일이 되면 기차역에 달려가 집에 내려갔고, 집에서 하루 저녁을 자고 나면 저녁 기차를 타고 대전에 올라오고, 월요일이 되면 일주일 내내 하모니카로 향수를 달랬던 시절이 있었다.

몇 분간의 버스 속에서 어린 아이로 인한 하모니카의 옛 추억을 상기시키게 하였던 순간이었다.

 

2006년 10월 22일 달소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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