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판/사는 이야기

나도 총각인데...

달소래 2009. 7. 10. 15:02

장마 후 불볕 더위다.
오늘은 서울의 위치한 리스회사에서 렉서스430 등록증을 재발급 받아 화성 면사무소에 접수하는 건이 있어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전철을 타는 것이 수월할 것 같아 석촌역까지 갔는데, 서류를 빠트려 왔다 갔다 하다보니 더위에 머리, 등줄기에 땀은 줄줄 흐르고 이러한 나에 대하여 신경질도 나고 짜증도 난다.
허나 어찌하랴 !
많지도 않은 직원인데, 여직원까지 다음 월요일까지 휴가 가고 나머지는 현장에 있으니 땡볕을 걸으면서도 ‘걷는 것도 하나의 운동이지. 남들은 돈 주고도 땀을 흘리는데, 돈 버는 일이기도 한데….’ 하고 자위를 했다.

디지털단지 역에 내리면서 사무실까지 차 타고 걸어가는 것이 걱정이다.
전철역 밖에 내리니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과 작열하는 태양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앞에 가는 젊은 친구를 하얀 옷을 입은 헌혈 안내자가 팔장을 끼며 뭐라고 말은 건넨다. 아마도 영등포의 뒷골목에서 여인이 지나가는 남자의 팔장을 끼면 불쾌해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젊은 친구나 여인의 행동은 연인처럼 아름다워(좀 과장해서 ^^) 보이고 자연스럽다.

나는 그 하얀 옷을 여인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팔장을 끼면, 헌혈 할 수 있는데….’ 하고 씩 웃었다.
‘예? 할아버지는 그냥 가세요…’
‘잉! 나도 총각인데???’
나야 농담으로 한 이야기지만, 그 여자의 말은 충격적인 말이다.
귀밑에 흰머리가 머리가 길어서 더욱 희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저씨란 말도 듣기 어렵단 말인가….

딴은 나이 먹은 고지혈증이 있을지도 모를 피보다, 혈기왕성하고 상대적으로 깨끗한 젊은 사람의 피를 선호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몇 달 전 신문에서 B형 감염 혈액을 수혈 받고 보균자가 된 신생아 부모가 국가와 대한적십자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7000만원을 지급하라” 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은 혈액은 수혈부터 철저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경종인지도 모른다.

남에게 사랑을 나누고 싶어도 사양을 당하는 나의 모습,
본인은 청춘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남은 할아버지라고 불러주는 나의 모습,
이러한 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고 허공을 보고 ‘씩’ 웃어 본다. 길가던 사람이 혼자 웃는 모습에 실성한 사람으로 보아줘도 좋다. 웃으면 젊어 진다니까…

사무실에 들어서다가 한 젊은 여인이 사내아이와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오늘따라 유난히 사내아이가 귀엽다. 볼이라도 만져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겠지….’

갑자기 순간순간이 소중해진다.
모든 사람들과도 즐겁게 지내고, 사랑해도 남은 시간이 지금까지 산 시간의 삼분의 일도 되지않은데….

 

2006년 8월 16일 달소래 씀.

 

'계시판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등포의 추억.  (0) 2009.07.17
황산에서 돌아온 저녁 바보가 된 나...  (0) 2009.07.10
흘러간 드라머 "아줌마" 를 보고...  (0) 2009.07.10
웃음과 스트레스  (0) 2009.07.10
세식구의 만찬  (0) 200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