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효과라고 하던가? 어떤 글이나 그림을 보면 연관되어 생각하는 현상을... 수선화님의 “여주 은모래 금모래..,” 의 글을 보니 조건반사처럼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신체적으로는 쇠도 녹이고, 이 세상 무엇이고 하면 될 것 같은 나이, 지금 생각하면 꿈에 차고, 하고 싶었던 일도 많았던 한참 젊었을 때 나이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이나 해군 장교 지원을 마다하고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선 바닥 생활(군대의 졸병생활)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도 같고, 군기간도 짧고, 3개월이란 교련 혜택도 받을 목적으로 사병으로 갔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하나만 알고 둘을 몰랐던 시절이었다.
대구의 최정산 꼭대기에서 박박 기다 일등병 계급을 달고 76년 9월 동료와 같이 첫 휴가를 왔을 때로 기억된다. 동료의 친구가 인천교대를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MT를 여주의 은모래금모래 유원지로 간다고 해서 흔쾌히 같이 따라갔다. 처음 많은 여자들에 좀 놀랐지만, 같은 학교에 다닌 다는 남자들과 친구(실제는 서너 살 어리지만)라는 구실로 곧바로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도착해서 짐을 꾸리고, 군용 삼각텐트(지금과 같은 좋은 테트는 없었다.)를 치고. 태극기도 달고, 제법 스카우트 단체의 MT 모습을 갖추었다. 저녁밥을 먹으며 술을 조금 먹은 기억이 난다. 주로 여자들이 왔기에 술을 많이 먹지는 않았는데, 어떤 여학생은 자기들끼리 사랑 고민을 이야기 했던 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런 이야기는 여기 있는 여학생들과 나하고는 상관이 없고, 나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무심코 흘려버렸다. 사랑이란 단어와는 너무도 먼 곳에 있었던 나는, 그 여학생들이 봤을 때 아마도 풋내기 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관심 있어 하는 여학생이 있었다는 것을 느꼈으면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주소를 묻지도 않고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내 짝이 그곳에 없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그런데, 5년 후 결혼을 할 때 사설 피아노 선생과 결혼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인연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득 “역사나 과거는 가정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오직 현재와 미래만이 있을 뿐이다”란 말이 생각난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자않았다면“도 있을 수 없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조하지 않았다면”도 있을 수 없고, “내가 여주의 은모래금모래 유원지에서 어떤 여학생과 결혼까지 갔다면”도 있을 수 없고, 과거의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오직 현실이 중요하고, 그 바탕으로 미래가 형성되지 않나 싶다. 그러나 “미래에 은모래.금모래 유원지에서 어떤 여인을 알아 결혼을 한다면..,” 이란 가정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
옛날 추억을 사진을 올려 본다. ....

남자들은 4명이 참석을 했다.

같은 조가 된 팀원들이 기타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스카우트 선서를 하고 있다. 손가락이 잘붙질 않았던 기억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체력단력이라고,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즐거운 식사시간, 라면을 먹었을까? ^^

태권도 품세를 교정하고 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