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판/사는 이야기

삼십년 전의 산행.

달소래 2009. 4. 16. 13:58
2006년 3월 19일
 


    후랫쉬맨 시절로 기억된다.
    그러니까 1971년 여름방학이 되어 시골에 내려와서
    무전여행보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넷이서 속리산을 가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친구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든 양복점에 다니는 친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와 양계를 하는 친구,
    서울에서 동국대를 다니던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산이라고는 동네 산밖에 가보지 못한 친구들은 속리산을 향했다.
    지금은 등산이 생활화 되어 지리산, 설악산도 오르지만,
    그 때만해도 1,000 m 가 넘는 속리산은
    어떻게 생각하면 무리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면서 무지하게 힘이 들었던 생각밖에 나지않으며,
    한 친구는 배탈이 났는지 내려가자고 신경질을 냈고,
    나는 끝까지 오르자고 한 기억이 난다.
    속리산의 정상인 운장대는 오르지 못했지만, 지금 사진을 보니
    산길로 정상을 몇 백미터 남겨두고 내려온 것 같다.
    작년에 속리산에 갔을 때 정상 전의 식당 간판을 본 기억이 난다.

    사진을 보니 산행할 때의 추억도 생각이 나지만,
    무엇보다도 차림새가 흥미롭다.
    그때만 해도 산을 오르는 사람이 흔하지 않아서 일정한 차람이 없었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지만,
    서울에서 뭔가 보았다는 친구와 나는 그래도 워커에 스타킹은 신고 있었고,
    다른 두 친구들은 그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또 재미난 것은 물통은 군인들이 쓰는 군용 수통에다 탄띠를 두른 것이며,
    텐트를 가지고 다녔기에 야전삽도 필수품이었다.
    지금처럼 등산이 웰빙시 되지않았던 시절에
    등산은 싸우러가는 군인의 차림새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법주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왔다는 세명의 여대생을 만났다.
    우리는 텐트를 치고 잤지만, 여자들은 여관에서 잔다고했다.
    여자들은 우리들보다 교련복의 학교이름에 더 관심을 쏟는 것 같았고
    덕분에 몇마디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 때가 그리워진다.

    속리산에서 1박을 하고 동학사에서 1박을하고 비를 만나
    허름한 군용텐트가 새 빗물때문에 잠을 설치고 갑사로 넘어오면서
    각출한 돈도 다 떨어져서 상월까지 걸어와 집에 돌아온 적이있다.

    앨범을 정리하다가 삼십여년전의 속리산에 간 사진을 보고
    잠시 그때의 추억과 등산 차림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껴본다.
    2006년 3월 19일 달소래 씀

 


탄띠와 군용 수통에 워커를 신은 나. ^^
 


야전삽을 어깨에 올려놓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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