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비가 내린다. 이번 주에는 유난히도 비가 자주 내리는 것 같다. 비로 인한 사연은 사람에 따라 가지가지일 테지만 나에게는 좋지않은 기억만 있는 것 같다.
지난 주 토요일 저녁에도 테니스시합에서 비 때문에 우승할 절호의 찬스에 물거품이 된 일도 있었다. 물론 파트너를 잘 만난 탓도 있지만, 한 달 반 동안의 테니스 렛슨 덕분인지 스트로크에 에러도 없고, 써비스도 그날 따라 잘 들어가서 3전 전승을 했고 나머지 2승도 무리가 없어, 신이 나 즐거워했는데 비 때문에 무기 연기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파트너만 그 대로 다음 시합에 계속되는 줄 알았는데, 뽑기까지 다시 해 파트너도 달라진다고 해 우승기회를 놓친 적이 있다.
오늘도 남부지방에는 폭우가 예상되는 지역이 있다고 일기예보는 예상하고 있지만, 장마비나 게리라성 호우가 올 때면 또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내가 어려웠던 시절이다. 침수 지역이었던 것을 모르고 이사를 갔는데, 그 해 8월에 집중 호우가 내렸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한 것이, 저녁에 출장을 가려고 했는데 일이 있어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12시경에 집에 들어와 잠을 자는데 소변을 보려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뿔사!!’ 발목이 차가워 옴을 느꼈다. 불을 키려고 하니 불도 들어오지 않는다. 밖에 나가 보니 훤한 새벽이다. 후랫쉬를 찾아 이곳 저곳을 살펴보니 화장실, 목욕탕, 방 두 칸이 온통 발목까지 흔건하다. 옆집에서도 난리다. 비는 그 후에도 계속 와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리고, 물을 빼는데 반나절이 걸리고, 가구, 옷가지 등을 빨고 말리는데 며칠이 걸리고 군인들의 신세까지 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그때 처음 수재 의연금까지 받아 난생처음 정부의 고마움을 느꼈을 정도였고, 지금도 그때 구호품으로 나온 담요를 간직하고 있다.
비에 대한 추억은 또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다. 서울의 길음동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여름으로 기억이 된다. 완행 기차를 타면 새벽에 용산에 도착하는데 그 기차로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오신다고 연락을 받아 일어나 보니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택시를 탔다. 그리고 비오는 차 속에서 무심코 ‘영등포’를 말했나 보다. 한참을 가다 보니 타고 있던 차가 한강다리를 넘는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왜 용산까지 가는데, 한강다리를 넘느냐’고 묻자 ‘영등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돼 물어,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아마도 비오는 날에는 ‘용산’ 보다 ‘영등포’가 가까이 다가오는 이름인 것 같다. 대주가요 가사에도 ‘영등포의 밤’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비는 그치지 않고 온다. 비오는 오늘은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와 술 한잔 하기에도 좋은 날, 은근히 전화가 기다려 지기도 한다. 아니면 내가 전화라도 하고픈 날이기도 하다.
(달소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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