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서 성희님을 보고 만나서 이야기 하다 멀리서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나를 보고 달소래님이 아니냐고 하면서 찾아 왔다고 한다.
우리 카페 회원인 예쁜친구님 이시다. 성희님과는 몇 달 동안 선원에 같이 다녔다고 한다. 석탄일 날 같은 선원에 다니니 만날 수도 있지만, 오늘 같이 수많은 신도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못 만날 확률이 더 많은데 아무래도 오늘은 만날 인연이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차를 마시고 있는데, 성희님이 오후 4시에 길상사에서 하는 점등식과 산사음악회를 보러 가자고 한다. 물론 쾌히 승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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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서 삼청동 가는 길. 도심의 빌딩 숲을 걷다가 이런 길도 포근함이 있어 좋다. |
솔직히 법당에 들러 부처님에게 공양을 하는 것보다도 젊었을 때 보았던 석탄일 밤에 휘황찬란한 등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삼각산에 있는 절의 등과 나무에 매달아 놓은 등은 너무도 아름다워 전문 사진사들도 많이 온다고도 들었다. 사진기를 가지고 오려다 그냥 온 것이 후회가 된다.
안국선원에서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성희님이 서울에도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을 구경시켜 준다고 안내를 해준다. 조금 언덕을 지나니 유명한 북촌마을이 나온다. 갑자기 젊은 사람들이 많다. 강남에 사는 젊은이들이 이런 전통적인 한옥의 거리를 보고 주말마다 몰려든다고 한다. 손에는 큼직한 DSLR 카메라가 들려져있고 커플들도 많다.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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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길을 걷다보면 옛날 한 옥들이 정겹다. 그런데,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사들여 도심의 별장같이 운영하고, 카페나 개인 공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
조금 더 가니 총리공관과 청와대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도 있다. 공기가 조계사나 선원의 공기와는 다르다. 이 길은 일본인 관광객들에게도 보여주는 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마침 오른 쪽을 보니 주차장 입구를 투명 프라스틱으로 천정을 해 놓은 비를 피했다. 잠시 비가 자자들더니 또 한 떼의 거센 바람과 함께 소똥마냥 큰 빗방울이 떨어진다. 주차장테라스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평상시 아파트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다. 어렸을 때의 양철지붕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생각난다. 초가집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양철지붕은 잘 사는 사람들의 상징이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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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공원에 들어서면 우선 공기 부터 달라진다. 서울의 한 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에 세계속의 서울이란 생각이 새삼 느껴진다. |
삼청공원길로 접어들었다. 입구의 오른 쪽 선돌에 멋들어진 글 三淸公園이 새겨져 있다. 공원을 들어서니 또 다른 신선한 공기가 주위를 휩싼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여기저기 자라고 있어서 인지 향긋한 소나무 향기가 은은하게 맡아진다. 산길도 나무 계단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구두를 싣고 갔는데도 별로 불편하지도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한 30여분을 걸으니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쉬고 싶었지만, 조금 더 가면 서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말바위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말바위 전망대에 도착하니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 보이지 않지만, 전망대 사진을 보니 청계산, 관악산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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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위의 전설이 있는 바위. 바로 앞의 조망대에서의 서울의 경치는 압권이다. |
말바위의 유래는 조선시대에 말을 이용한 문무백관들이 시를 읊고 녹음을 만끽하며 가장 많이 쉬던 자리라 하여 말(馬)바위로 불리기도 하고, 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末)바위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조금 올라가 널직한 바위로 자리를 잡아 쉬기로 했다. 절에서 가지고 온 떡과 약간의 음료수와 물로 목을 축이기도 하면서 두 여인의 이바고 질에 언제 추락할지 몰라 낙하산을 몇 번 폈다 접었다를 했다.
정말 부처님 오신 날 선원에 온 것은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시원한 경치에 탁트인 서울 시내를 보니 이 순간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어 보였다.
걷다 보니 조그만한 봉우리를 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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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을 걷는 멋은 한층 고풍스러움을 준다. |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성북동이다. 구릉까지 좋은 집과 나무로 이국에 온 것 같은 풍경이다.
옛날 70년대 하숙을 1년 정도 이쪽에서 했는데, 어디 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당시 비탈진 언덕길을 몇 분 정도 걸아 한 여름에는 등줄기에 땀이 흔건했던 것 같은데....
성희님이 70년대의 성북동 달동네를 구경 시켜 준다고 하면서 잠시 성밖으로 나간다. 아직 재개발이 되지 않은 곳이다. 나는 초가집도 있는 것을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당시 달동네의 비탈진 좁은 골목길이며 낡은 집들은 영락없는 70년대의 집들이다.
와룡공원길로 접어 들었다. 내려오는 길이 구불구불 용과 같이 생겨서 와룡공원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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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밖에서 보는 성곽. 한 여름 담장이가 무성할 때면 더욱 고풍스러움을 준다고 한다. |
문득 여기까지 오면서 성희님이 명 가이드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환화 회장의 집과 영빈관, 군데군데의 유명 음식점과 카페등 모르는 곳이 없는 것 같다. 시간이 되면 번장으로 모셔 삼청동 둘레길 번개라도 치고 싶은 생각이다.
드디어 3시간의 삼청공원, 성곽길, 와룡공원길의 산책을 마치고 삼각산 길상사에 도착했다.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오색연등이 하늘과 나무에 수를 놓았다. 까만 밤하늘에 불이 켜질 것을 생각하니 옛 추억이 떠오른다.
그저 짝사랑이랄까?
아니면 당초부터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였는지 모른다.(계속)
달소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