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나 걸었는지 지도를 놓고 표시를 해보니 술 먹고 햇가닥 한 것 같다. ㅎㅎㅎ)
지난주의 일인 것 같다. 대치동에 사는 친구가 약속도 없이 전화가 온다. "친구야! 오늘 시간 되니? 막걸리 한 잔 하게..." 그 때는 연일 술을 먹었는데, 그래도, 한 잔 하자고 불러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 하체에 힘 있고, 건강할 때 술 한 잔도 하지 힘 빠지면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개포동 전철역에서 만나는 시간은 7시. 개포역에 도착해 생각하니, 근처에서 치과를 하는 친구가 퇴근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한번 전화를 해보고 싶어진다. 실은 이 친구하고 전날에도 야탑역에서 막걸리를 한 친구이다. 전화를 하니 아직도 병원에 있어 불러냈다.
언제부터인지 막걸리를 먹다 보니 소주는 입에 대기도 싫다. 아니 너무도 맑아 싫은지도 모른다. 세월을 먹다보니 색깔도 투명하고 깨끗한 것 보다 적당히 혼탁하고, 우유빛 나는 색갈이 있는 술이 좋은 지도 모른다. 개포동의 아담한 술집에서 서울 장수 막걸리에 두부김치를 시켰다. 그런데, 공주밤 막걸리가 눈에 띈다. 먹어보니 달짝지근한 밥맛도 있으면서 구수하기도 하고, 장수 막걸리같이 쏘는 맛도 있다. 새로운 막걸리 상표의 발견이다. 세 명 이서 5병을 먹으니 기분이 딱 좋다.
술집을 나오면서 개포동 바로 옆의 대치동에 사는 친구가 걸어간다고 하니 분당의 정자동에 사는 친구도 전철을 타지 말고 양재 천으로 걸어가자고 한다. 정자동까지 걸어간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깜짝 놀라 물으니 가는 데까지 가지고 한다. 술 한 잔 먹고 양재 천과 탄천길을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쾌히 승낙하고 천변 길을 걸었다. 9시 정도 되었는데, 날씨가 더운 탓인지 산책 겸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많다. 밤이라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양재천의 검은 수풀에서 들짐승이라도 뛰어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 가을은 되지 않았지만, 가을을 전초병인 이름 모를 풀벌레의 울음소리며, 듣기에도 아름다운 방울벌레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친구와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남자들이 흔히 하는 여자, 애인 이야기부터 친구 이야기, 음악 이야기, 그림 이야기, 등... 일확천금을 벌기도 하고,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하고, 달나라에 초청 게스트까지 꿈을 꾸어본다. 꿈은 원대할수록 좋은 법이니까... ^^ 한참을 걸은 것 같다. 수서역은 지난 것 같고, 옛날 친구가 와 봤다는 패밀리 아파트도 지났다. 슬슬 다리가 아파온다. 끝이 모르고 이야기 할 것 같은 이바고질도 적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탄천길에서 나와 곧바로 택시나 버스를 탈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운동하러 동네사람들도 많지 않아 물어 보았더니 한 브럭을 더 가야한다고 한다. 물은 곳이 서울 공항의 옆길인데, 대책이 없다. 서울 공항이 끝나는 곳까지 가는 수밖에... 등산화 산길을 걷는 것도 아니고, 구두 신고 걸어서인지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사타구니의 가랫대가 서는 곳도 아파온다.
우리들은 그 많던 말 수도 적어졌다. 그저 묵묵히 걸으면서 간간히 몇 마디 하면서 무언을 대화만 오갈 뿐... 처음에 걸을 때 거리에 관계없이 옆길로 새 빠지기로 했는데, 우리가 얼마를 걸었는지 지도를 보고 싶어 확인을 해 봤더니 13키로 정도를 걸은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허수처리장에서 나와 태평역 근처에서 11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갔다.
친구한테 말했다.
"너 집에 가서 개포동에서 여기까지 걸어와서 늦었다고 말해라"
"어떻게 말해, 술 한잔 먹어 늦었다고 하지..." ^^
지금 생각하면 술 먹은 객기인지... 계산하지 않는 막무가내 무댓보적인 행동양식인지, 아니면, 밤에 양재천을 걸으면서 대화 하고 싶은 멋진 한여름의 낭만인지.... 아무 때고 다시 한번 친구와 개포동에서 술 한 잔 먹고 다시 탄천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든다. ^^ (2011년 8월 달소래 씀)
(제목: 산길, / 양주동작사,박태준곡,바리톤 윤치오 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