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여행기.나들이사진

중국황산여행기(3)(진동비취계곡,화산미굴,청대옛거리 관광)

달소래 2009. 5. 28. 12:02

황산 4일 째 : 진동비취계곡, 화산미굴, 청대 옛거리 관광.

배어서 시달리고, 흔들리는 열차에서 선잠을 자다가 특급 호텔은 아니지만,호텔에 들어와 잠을 자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아 오늘의 걸음걸이는 한결 가볍다.

영화 와호장룡의 촬영지 였다는 비취색 소, 우측의 정자가 세멘트로 만들어져 자연스럽지 못하다.

첫 번 째 관광지는 진동비취 계곡.
영화 와호장룡의 촬영지라고 해 상당히 아름다운 곳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가보고 나서 실망이었다. 우리나라의 지리산이나 덕유산, 설악산의 계곡이 훨씬 더 깊고 아름답고, 볼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중국 사람들 휴일에는 갈 곳이 마땅히 없는 것 같다. 계곡의 곳곳에는 공작지 등 소(물웅덩이)가 있는데 그 빛깔이 비취색의 아름다운 색깔을 하고 있는 것 하나는 볼 만 했다.
군데 군데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온통 세멘트로 만들어져 있어 옛스러움은 찾아 볼 수 없었고 페인트가 너무 선명해 자연미가 없었다.

진동비취계곡 공작지 앞에서

그리고, 줄타기 곡예를 하는데,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그저 산에서 써커스를 보라고 하는 것인지 ….
우리나라는 관악산의 산림욕장도 전망대를 나무로 자연 친화적으로 만드는데, 중국은 그런 면에서는 한참 뒤 떨어진 것 같았다. 너무 인위적인 것이 많다.

황산 지방에는 우리보다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대나무가 많은 것 같다. 황산의 나무도 산 아래는 대부분이 대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온갖 형상을 한 기기묘묘한 소나무 등 침엽수림이 있었다.
어쨋튼 첫번째 관광지인 진동비치 계곡은 별로 볼 것이 없는 그저 다리만 피곤했던 기억이 난다.

 

진동비취계곡에서 줄타기 곡예

두 번 째 관광지 화산 미굴.
들어가는 입구와 내부는 우리나라의 강원도의 동굴 보다는 넓지만 길이도 짧은 것 같고, 아기자기한 면도 없는 것 같았다. 내부에 사람들이 살았던 유물이 발견되고 벽에 자죽을 내서 어느 정도의 방음 효과를 냈다는 데서 옛사람의 현명함과 의미를 찾고 있겠지만, 이런 곳을 구경하려고 배타고 기차타고 고생고생 하면서 멀리 중국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니 구경할 맛이 나지않고 덥기만 하다.
아쉬웠던 것은 다른 중국의 관광객은 빨간 제복을 입은 가이드가 소형 마이크를 준비해 화산미굴의 군데군데를 자세히 설명을 해주는데, 한국 관광객을 데리고 온 우리의 가이드는 그 조그마한 육성으로 설명을 해주니 답답하기 만 했다. 중국 가이드의 마이크 목소리의 울림 때문에 아무것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화산미굴 걸어가는 입구의 출렁다리.여자들은 무서워서 잘 못 걸어갔다.

우리가 싸구려 관광을 해서 그런가?
가이드 팁을 일인당 2만원 씩을 지불했는데….
가이드가 10명이 동원 되었더라도 1인당 20만원이면 중국에서는 1,600위안이나 되는 적지 않은 돈인데….
가이드에게 마이크는 군인으로 말하면 총이나 마찬가지인데, 6-7명이나 되는 우리의 가이드 중에서 한 사람만 마이크를 가지고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산미굴까지 들어가는 2키로 남짓 되는 걸어가는 길에 인력거가 인상적이다. “두 사람 천원” 이라고 한국인 관광객을 호객하는 모습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천원’은 한국사람을 상대로 호객 행위를 하는 기본 화폐단위 인 것 같다. 거리의 과일을 파는 사람들도 사과 몇 개에 천원, 밤 한 봉지에도 천원, 모두 천원으로 해결이 된다. 천원이면 중국 돈으로 7.7위안 인 작은 돈이 아닌데 말이다.

화산미굴 걸어가는 입구에 인력거. 대부분이 50대 이상이 된 나이든 사람들이 인력거를 끄는 것 같았다.

황산미굴 관광을 마치고 버스 옆에 쉬고 있는데, 안면이 있는 여자 세분이 기다란 것을 먹고있다. 순간 옛날 어렸을 때 먹고 단수수(사탕수수)라는 것을 알고 달라고 하나 준다.
실로 40년 전, 초등학교 시절 시골에서 먹던 맛 그대로다. 오히려 그 때보다 단 물이 더 나왔다. 맛이 있어 허겁지겁 먹다보니 목까지 막혔다. 단물을 다 먹은 후 찌꺼기를 뱉으려고 휴지통을 찾으니 보이질 않는다. 할 수 없이 밭고랑에 뱉고나니 먹고나서도 께름직하다.
화산미굴의 관광을 마치고 황산의 명물인 실크와 보석 관광을 하기 위해 또 버스를 탔다.
이 때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우리 3호 차의 가이드도 연일 말을 하는데 지쳤는지 분위기를 우리 자체적으로 놀도록 유도하며 조장으로 운해님을 지적한다.

화산 미굴 나와서 사탕수수를 먹는 일행

노래를 한 곡씩 하라고 했는데, 입담으로 때우고 한 남자를 지적한다. 그 남자 3호 차에선 그래도 젊은 남자다. 조금 뜸을 들이다 나오더니 천상병 시인의 시를 읊고 노래 한 마디를 한다. 가곡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수준급의 노래 솜씨다. 많은 박수를 받고 다음 지적 한 사람은 옆에 앉은 짝인 3호 차의 영계(?) 이면서 제일 섹시한 여자.
노래 못한다고 이리저리 빼면서 가까스로 나왔다가 무슨 노래를 했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적한 사람이‘저기 모자 쓰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하며 나를 지적한다.
실은 그때 “뭐 나와서 노래하는 데 이리 빼고 저리 빼? 그저 아는 노래 하나 부르고 말지” 라고 생각하고 창 밖을 보고 있을 때였다.
선뜻 나가 “아까 누가 시를 읊던데, 나도 좋아하는 시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하고 서정주의 ‘동천(冬天)’ 이라는 시를 읊었다. 처음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이내 기억해 들려주었다. 시의 내용은 이렇다.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초승달이 떠 있는 차가운 겨울 하늘, 그 옆에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연상 하며 지은 시로 간단히 생각해도 되지만, 정식으로 감상한다면 다음과 같다.

이 시는 고도의 상징적 수법과 압축된 시어로 팽팽한 긴장을 빛어내는 핵심 이미지는 ‘눈썹’과 ‘새’이다.
‘눈썹’은 여인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동시에 그믐달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매서운 새’는 ‘동지 섣달’이라는 ,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시공간을 뛰어넘으려는 열정을 지닌 존재로 풀이된다. 그 ‘매서운 새’가 ‘시늉하며 비끼어 가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새’가 ‘눈썹’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임을 암시한다.
이를 단순히 해석하면, 인간은 물론 새까지도 그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알아차리고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는 외경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여기서의 ‘눈썹’은 절대적 가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 절대적인 가치는 ‘하늘에다 옮기어 심음’으로써 절대적인 경지로 승화된다. 또한 ‘매서운 새’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상징하는 말로,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간’다는 것은 세속적 욕망이 절대적 가치에 대한 외경감(畏敬感)에 비켜 간다는 뜻이다.

황산에서도 그렇고 양주에서도 대나무들이 울창하고 많았다.

또한, 이 시는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이기도 하지만, 사연이 있는 시이기도 하다.
그 사연이란 지금은 추억 속에 남아 있지만, 마누라와 연애를 할 때, 한 겨울 여의도 쪽을 걸으며 들려주었던 시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 때 좋은 점수를 땄는지도 모른다. ^^

시를 들려주었는데도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시 만으로는 부족하단다. 노래를 부르던지 재미난 이야기라도 들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난 노래방에서는 잘 부를 수 있지만, 생음악으로는 시원치 않다. 그래서 음담패설이지만 양해를 구하고 한마디 했다.
달리기 시합에서 남자 여자를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결승점에서 성이 바뀐 이유를 아느냐는 물음이다. 한 두 사람이 아는 것 같았지만 큰 소리로 대답하지는 못한다. 들어 본 사람이 많겠지만, 답은…
‘남자는 x빠지게 달려서 여자가 되었고, 여자는 x나게 달려서 남자가 되었답니다.’ 라고 말하니 금방 알아듣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후후후, 내가 너무 야 했나?”
내 차례가 끝나고 다음 사람을 지적하려 하니 실크 쇼핑 장소에 도착해 내려야 한다고 한다. 영계 노래를 잘 부른다는 사람을 지적하려고 했는데….

화산 미굴 나와서 사탕수수를 먹는 일행

쇼핑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한국의 어느 산악회에서도 회비가 싼 대신 1시간 정도 단체 쇼핑을 소개한다는 데, 해외 패키지 산행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한국에서의 스케즐에는 명시가 되어있지 않아 께름직한 면이 있다. 안 사면 그만이니 개의치 않고 구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 구경 간 곳은 황산의 실크 메이커.
각종 실크 제품을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곳이다.
중국 물건은 대부분 깍을 수가 있지만, 이곳에서는 에누리가 없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니 관계없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들어가 실크 이불의 가격을 물어보니 욕심이 난다.
2키로 들이 실크 이불 속과 실크 이블 커버가 15만원 정도이니 한국에서는 이 가격의 배는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려 23만원을 들여 실크 이불 속 2개와 실크 커버 한 개를 샀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 옥션에 들어가 검색을 해 보니 정확한 사양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실크 이불 커버가 78,000원 정도 한다. 이 가격이면 중국에서 더 비싸게 주고 산 것 같다.

중국의 실크 제품, 가격도 깍아주지 않고, 너무 비싸 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처음의 생각대로 구경 만 하고 물건은 사진 말았어야 하는데….

두 번 째 쇼핑 장소로 간 곳은 옥 등 보석을 가공해서 파는 곳.
나는 실크 이불을 샀기에 아무것도 구경을 하지 않고 옥방석이 깔려있는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옆을 보니 옥 벼게가 있어 무심코 물어 보았다. 한 개에 이만 오천 원 이라고 한다.
“잉? 올 여름 대나무 베개를 기 천원씩 주고 산 기억이 나는데…”
난 종업원에게 만 오 천원에 달라고 했다. 결국에는 만 팔 천원을 주고 샀지만 15,000원에도 살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세 번 째 쇼핑 장소는 송대 옛 거리 및 재래시장 관광이다.
시장의 길이는 한 1키로 정도 될까? 한참을 걸어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 층으로 기다랗게 시장이 지어져 있는데, 이 층은 낡아서 사용을 하지 않고, 일 층만 장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인사동과 같이 황산의 특산물을 팔고 있었다. 주로 황산석으로 만든 특산물과 그림과 화선지 붓 등을 팔고 있었다.

재래시장 끝에 자리잡은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보석으로 만들었다는데, 실크이불을 사고나니 돈도 없어 사지 못했지만, 안 사길 잘했다.

며칠 간의 중국 음식에 맛이 길들여졌는지 저녁은 맛있게 먹었다. 메뉴도 우리의 맛과 비슷했고, 특히 돼지고기는 우리의 돼지갈비하고 비슷한 맛이었다. 그런데, 음식점 앞이 이동 과일상 및 물건을 사달라는 꼬마들과 여인들로 식당 밖을 나가지 못할 정도로 많다. 열 살 정도 먹은 여자 아이가 군밤을 들고 사달라고 하는데 가엽기 짝이 없다.
필리핀 여행을 할 때다. 20대 초반 쯤 될 법한 애엄마가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모습보다는 비참해 보이질 않지만, 어린 아이를 혹사 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저녁 후 기차 시간 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자유시간을 가졌다. 가이드를 따라 발 마사지를 가고 싶은 사람, 재래시장을 더 보고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로 나뉘어 삼삼오오 흩어졌다.
가이드의 발 마사지 하는 비용도 말 할 때마다 다른 것 같다. 처음 마사지 가격을 들은 것은 재래시장 오는 버스 속에서 한화 15,000원 이라고 했고 깍을 수 없는 가격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들은 소리는 10,000원에 해 준다고 했다.

송대 옛거리의 삼륜 자전차

나는 대구에서 온 보코님을 따라 50위안 짜리 마사지를 받았다. 가격으로는 6,500원 밖에 되지 않으니 가이드가 소개한 마사지 보다 저렴하게 받았다.

처음 하는 발 마사지.
한국에서는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마사지를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호기심도 있었지만 하고 나니 황산에서의 발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발 마시지를 하는 30여 분 동안 잠까지 올 정도였다.

음식점에서 황산 역까지 다시 버스를 이동을 했다.
남경역에서 열차를 놓친 기억이 있는 우리 3호 차 식구들은 유난히도 민감했다. 황산역에는 중국의 관광객 및 열차 손님으로 가득했다. 우리의 70년대 명절 서울 역을 방불케 했다. 새치기하는 중국 사람은 부지기수였고 정확한 줄도 없이 개찰구를 향해 사람들이 뭉쳐 밀려들어갔다.

송대 옛거리 야경

나는 옆줄에 있다보니 본의 아니게 떠밀려 중국인 들이 하듯이 새치기로 우리팀보다 앞 줄에 섰다. 개찰을 할 때 즈음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며 갑자기 앞쪽에서 소리를 지르며 싸움질을 한다. 넥타이는 매지 않았지만, 깔끔하게 차려 입은 2-30대의 젊은이와 남루한 차림을 한 4-50대와 치고 박고 하는 싸움이 벌어졌고 옆에서도 소리치며 패싸움으로 번지기 직전에 공안이 투입 됐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옆에서 소리치는 것을 보니 순간 겁이 나기도 했다. 패싸움으로 번져 난장판이 되면 외국인 인 나는 어떤 피해를 볼 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개찰구를 빠져 나와 혼자 가려다 잠시 뒤를 보니 1호차 가이드가 인원 파악을 한다고 한다. 그러자 시간도 없는데 무슨 인원파악 이냐고 소리 친다.
1. 2호 차의 식구들은 제대로 서서 인원파악에 들어갔는데 3호 차 사람들 만 흩어져 있다. 가이드도 없다. 버스 속에서 뽑아 놓은 조장 운해님도 줄을 서서 인원파악을 하자고 몇 마디 하다 그만 둔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큰 소리로 한 마디 했다.
“줄 좀 섭시다. 인원 파악을 빨리 해야지요. 차 시간은 넉넉 합니다.”

송대 옛거리에서 물건을 사고있는 외국인

소리치고 직접 나와서 한 줄 한 줄 줄을 맞춰 갔다. 멀리 떨어진 한 사람이 별꼴이란 듯한 인상으로 나를 쳐다본다.
남경역에서 혼줄이 났던 3호 차 식구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이해도 간다. 그렇지만 또 낙오자나 기차를 못타는 사람이 생기면 안되지 않겠는가.
가치를 타는데 문을 한 쪽만 열어 놓았기에 많은 인원이 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또 타지도 않았는데, 기차가 떠날까봐 사람들이 불안해 했다.
“제가 제일 마지막에 탈 테니 안심하세요.” 하고 소리치고 보니 가이드도 아직 타지 않았다. 나중에 기차를 타면서 말했다.
“가이드는 저보다 더 늦게 타야지요.”
조금 후에 전원을 태우고 기차는 진강으로 출발을 했다. 오늘도 기차의 침대에서 잠을 자야 한다.

배정된 침대의 자리는 중간인 2층. 조금 있다 보니 3층 침대에 여자분이 배치되어 올라간다. 여자분이 3층에서 자기는 힘들 것 같아서 물었다.
"3층 침대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물으니 황산에 올 때도 3층에서 잤는데, 바꾸어 주었으면 하는 눈치라 쾌히 2층 침대를 양보하니 여자분이 고마워 했다. 별 일도 아닌데... ^^

기차의 침대칸. 술에 만취해 어떻게 3층 침대로 올라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번 째 침대 칸에서 보내는 밤이라고 좀 여유가 있다. 옆 침대 칸을 보니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가지고 온 먹다 말은 소주를 꺼내니 옆의 3층 침대에 있는 사람도 소주 한 병을 꺼낸다.
침대 칸에서 마시는 술도 정취 있다. 밤 늦게까지 술을 먹다 12시가 되니 소등을 한다. 우리 팀은 술도 다 먹어 옆의 써니님 팀에서 술 판을 벌렸다. 소등을 한 후 헤드 랜턴을 조명으로 먹는 술도 이색적이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1시경에 잤을 것 같다.
술 먹고 3층 침대에 올라가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머리가 천정에 닿고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다. 조금만 잘못하면 2미터 아래로 떨어진다.
3층 침대로 올라가는데 한 가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침대에 올라가다 떨어지면 어디가 부러져도 부러질꺼야.…”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올라가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히려 거뜬한 것 같다. 술을 먹고 자니 푹 자서 지난 번 침대 칸에서 잘 때 보다 피로가 쌓이지 않은 것 같다.

2006년 10월 추석 연휴 중국여행에서 달소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