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판/사는 이야기

상가집 친구들...

달소래 2009. 5. 22. 00:49


초등학교 동창의 부친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와 시골에 내려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평소에는 한가하다가 갑자기 일이 생겨 3시 경에야 시골로 출발 할 수 있었다.

도로변의 아카시아 꽃이 만발했다. 문을 열어 놓으니 달콤한 아카시아꽃 향기가 코를 스친다.
며칠 전 밤늦게 안양천변을 걷다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해 혼자만 즐기기가 거시기해 친구에게 전화까지 했는데....

간만에 가는 시골 풍경이 낯설다. 중소도시도 이제는 아파트들이 들어서서 서울의 주거생활 못지 않고 풍경도 서울의 변두리와 다른게 없다.
큰길가의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문상을 하는데 친구인 상주는 없고 형제들만 있다. 문상을 하고 자리에 앉으니 그제서야 친구가 얼굴을 보인다.
친구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식사를 하다말았는지 입가엔 음식이 입가에 묻었는데, 입술을 몇 번을 움직이다 간신이 내 이름을 부른다.
“희진이, 오, 오. 오래..간..만이다”
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잠시 동안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다 손을 잡았다. 전에 아프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이렇게 까지 인지는 몰랐다.
권투선수로 유명했던 무하마드 알리가 앓았던 파킨슨씨 병 이란다. 좀 나아졌다는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한다. 걸음걸이도 어린아이처럼 종종 걸음이고 눈동자도 생기가 없다. 그래도 문상 온 손님들한테 인사한다고 집사람과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와이프 역시 남부럽지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에 쪼들려서인지 할머니 같이 허리가 삼십도 정도는 굽은 것 같다.

상가에서 식사와 소주를 한잔 먹으며 전부 똑같은 소리다. 친구의 병세에 쫄기쫄기한 돼지고기도 달콤한 과일도 맛이 없다고 한다. 문득 나를 포함해 문상 온 친구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서울에서 내려 간 친구들은 그래도 좀 봐 줄만하다. 시골친구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버리는 허옇고 검게 탄 피부에 주름의 골이 깊다.
당뇨로 피골이 상접하고 이빨이 다 빠져 틀이를 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돈이 없는지 틀이도 못하고 옛날의 칠십 노인과 같이 과일을 먹을 때도 자극적인 입모양을 하며 합죽이같이 입을 움직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도 약간은 대머리이지만, 몇 가닥 안남은 머리를 좌측머리에서 우측으로 빗어내린 대머리 빛나리들은 실제의 나이보다 일곱여덟살은 더 들어 보인다.
친구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 한숨과 함께 소주잔만 오고갔던 만남이었다.

이수광은 〈술회〉란 작품에서, 詩似巧工雕萬物 酒爲長추掃千愁(시사교공조만물 주위장추소천수) [시는 교묘한 솜씨로 만물 아로새기고 술은 빗자루 되어 온갖 근심 쓸어가네.] 라고 노래했던가....

장례식장을 나와 몇몇이 나와 딸아이와 같이 사는 친구 집에 가 고스톱판을 벌리며 수없는 이바고질에 취하도록 많은 술을 먹었지만, 서울에 와 있는 지금, 어제 무엇을 잊어버린 듯 자꾸 고향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달소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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