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4일
오늘은 사무실을 일찍 나왔다.
남산의 하이얏트 호텔에서 고등학교 동창의 아들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다.
서울 역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데, 호텔의 주의가 자가용과 택시로 꽉 밀려있었다.
“이상한데, 평소에 이 길은 막히지 않는 길인데?”
“손님, 혹시 호텔 예식 하는데 가시나요?”
“네, 그런데, 길 막히는 것과 호텔 예식이 무슨 관계라도 있나요?”
“그럼요. 좀 유명한 자제가 결혼하면 호텔 주변은 여지없이 막힌답니다. 두고 보세요. 앞에 있는 자가용이나 택시, 모두 호텔 쪽으로 갈 겁니다.”
기사 말대로 정말 앞에 줄지어 섰던 차량들이 모두 호텔 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예식을 시작할 때 보니 하이얏트 리전시 룸이 꽉 차고 서있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족이 천명은 넘게 온 것 같다. 식이 끝나고 룸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위의 층 뷔페에서 식사를 하고 가라고 방송으로 말한다.
많은 사람 속에 축복을 받는 남자다운 신랑과 어여쁜 신부로 백년을 아름답게 살 것 같은 한 쌍이다.
피로연에서 날라주는 메뉴가 다섯 가지가 나오는데, 나올 때 마다 갈금져 주는 대로 먹어댔다. 주 메뉴가 안심 스테이크 풀 코스 같은데, 고기도 그리 많지도 않다. 그래도 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다른 친구들도 다 같은 생각인 것 같다.
“먹은 땐 배부를 것 같지 않은데, 배가 든든하네?”
아마도 일인분에 4-5만원은 할 것 같으니 돈 값어치는 하는 것 같다.
포도주는 어디 産인지는 모르지만, 먹는 대로 따라 주는 것을 다 해결하니 얼큰해져 오는 것 같다. 포도주를 먹고 “얼큰하다”는 표현이 이상한 것 같지만 딱히 적당한 말이 없는 것 같다. 막걸리나 소주에 맞는 말인데…….
혼자 집에 오면서 갑자기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 생각이 난다.
“그런데, 즐거운 결혼식에 참석하고 왜 이런 생각이 날까?”
“혼자 오는 내 스스로가 외로워서 일까?”
“즐겁고 슬픈 일이 한 순간 인 것 같은 생각에서 일까?”
복합적인 감정의 소산이리라…….
어쩌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놀고 공부하며 젊은 시절을 보내고, 결혼을 해서 아옹다옹 지지고 볶고 喜老哀樂을 겪으며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금요일 인가보다.
갑자기 문자 메시지를 보고 친구에게 확인 전화를 했더니 뇌출혈로 죽어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을 치른다고 했다.
대학교 때 신촌 앞 동네에서 같이 하숙을 하며, 집에서 향도 장학금이 오면 막걸리도 많이 마셨고, 그 친구 하숙집에서 놀기도 하고, 밤새워 토론도 했던 친구인데…….
그래도 젊었을 땐, 일년에 한 번 쯤은 대학 동창 송년회에서 얼굴을 보았지만, 나이 들어, 근 10여 년 동안은 지방에 근무해 일년에 한두 번 안부 통화 정도로,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더욱이 애통한 것은 죽기 전까지 약 40일 동안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너무도 울어서인지 눈자위가 퉁퉁 부어오른 미망인이 우리들에게 다가와 말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가 쓰러졌을 때는 정신도 없었거니와 수첩이나 어느 메모에도 대학교 동창 분들의 전화번호가 없어서 연락을 못 했답니다. 아빠는 서울로 발령받고 나서 좋아 했지요. 친구들도 만날 수 있다고 했었는데…….” 하며 말끝은 흐린다.
“마음고생이 많았던 것 같아요. 진주에 소장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정년도 몇 년 안 남았으니 시골에서 정년을 채워야지’란 말까지 했는데, 서울 발령을 받고서는 보직이 없었데요.”
라며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란 말도 덧 붙였다.
친구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 같았다. 그 나이에 월급쟁이 한 것 만해도 대단한 것인데…….
“아이고, 소심한 자식…….” 라고 내가 말하자,
“야 !, 너도 그 위치에 있어 봐~~~” 라고 옆에 친구가 대답한다.
대학교 때도 좀 범생이과에 속하는 친구였지만, 내가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친구를 살릴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50대의 나이를 “사오정”과 “오륙도“로 표현했던 유행어도 몇 년이 지났는데, 직장에서 그만 두라고 스트레스를 받아 혈압도 없던 건강한 놈이 뇌출혈로 세상을 뜨다니…….
회사도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지만, 친구 스스로의 죽음에 대한 책임도 있고,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누라의 책임도 큰 것 같다.
남편의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를 마누라가 옆에서 위로하고 격려를 했으면 친구가 부담을 덜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나이까지 직장에 근무했으면 노후의 살만큼은 어느정도 준비해 놨을텐데, 직장에 대한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아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았나....
그 직장 한평생을 다닐 것도 아니고, 때가 되고, 나이가 먹으면 젊은 사람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고, 용퇴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어쨌든 친구 생각을 하면 그 날도 술에 취해 집에 왔을 텐데, 며칠 전 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은 병명으로 술 한 잔 안하고 음료수로 배를 채운 나를 생각하면서 지금은 웃음을 짓지만, 좀 이른 감은 있지만, 우리나이엔 돌연사나 죽음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나이가 아닌가 싶다.
한 장의 유언장이나, 긴급 시 연락처와 금전에 대한 대차대조표 같은 것을 작성해 가까운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비치해 놓는 것도 좋을 듯싶다.
(달소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