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없는 아이들(필리핀 기행)
2004년 6월 14일
이곳 필리핀의 어린아이들을 보면 내가 자랄 때가 생각이 난다.
사는 모습은 똑같지 않겠지만,
그 옛날 한여름이면 한낮의 더위에 지쳐 해가 지면 철로 변은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된다.
우리 또래의 어린아이들은 술래잡기도 하고 병정놀이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밤늦게까지 어른들의 곁에서 무덤가에 소복을 한 귀신 이야기며, 비오는 날의 달걀귀신이야기, 도깨비 불 이야기를 들으며 집에 갈 때는 무서움을 이기려고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이곳 필리핀의 사람들은 실업자가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집 앞에 의자를 놓고 나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저녁이 되면 옛날의 우리와 같이 어른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아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논다. 허름한 옷에 끼니를 제대로 못때운 아이들도 있겠지만, 무엇이 재미가 있는지 해맑은 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특별한 장난감이나 놀이기구를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닌데 자기네들끼리 재미있게 논다.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면 그저 나무조각이나 쇳조각, 종이 나부랭이를 가지고 놀고 있다.
운동장이나 공터가 아닌 자동차나 지프니, 오토바이가 달리는 길거리나 길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놀고 있다. 우리의 아파트 단지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과는 천지 차이가 난다.
문득 이 아이들이 크면 “생활이 나아질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의 혁신적인 개혁이나 인식혁명이 없이는 빈부의 차이만 더 벌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못사는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보면 가난의 구렁에서 헤어날 것 같지가 않다. 우리의 부모와 같이 살려는 억척스러움이 보이지 않고, 너무도 게으르고 잠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