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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빴던 하루(필리핀 기행)

달소래 2009. 3. 10. 15:48

2004년 3월 18일

 

며칠을 컴에 들어오지 못한 것 같다.
여기서는 일이 바빠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답답하기만 하다.
한국에서는 아침에 할 일을 생각하고 대부분 계획한 것을 일이 되던 안 되던 결론이 나는데,
이곳에서의 일은 그렇지가 않다. 시내의 교통체증은 서울의 몇배가 되는 것 같다.
자동차를 타고 10시경에 나가면 두군데를 들르면 퇴근시간이고 일이 마무리 되는 일이 없다.
그래도 며칠 전은 물건을 운송하는 건이라 그래도 마무리가 됬다.

시내 교통은 지옥이지만, 마닐라 교외로 나가니 좀 숨이 트인다.
드넓은 창고에 도착하니 와이어로프 90여톤이 작업중에 있었다. 곧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고 나니 잠자는 시간이란다.
우리팀들은 딱이 식사할 곳도 없어 옆의 나무 그늘에 가기로 했다. 마침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이 쉬려고 만들어 놓은 마루가 있어 앉았다.
그리고, 10m 정도 떨어져있는 맞은편 나무 밑에 열일곱 여덟살 먹은 듯한 두 처녀와 그 또래의 남자 친구 몇 명과 30대의 건장한 남자 몇 명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우리 팀의 필리핀의 거주하는 넉살 좋은 김사장이 필리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무슨 말을 붙이는 것 같다. 그리고 한참 후에 우리팀에 와 말을 한다.
"우리집에 빨래 해 줄 사람이 없는데, 올라나 모르겠네요?"
"한 사람은 마음이 있어 하는데, 다른 얘는 관심이 없는 것도 같고...."
어느 새에 식모를 구한다고 저편에 앉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말했나 보다.

몇 시간을 작업하는 것 같다.
크래인을 동원해서 하는 일이니 쉬운 일도 아니다. 지루해서 큰 망과나무에 둘러쌓여 있는 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뒤에 가서 보니 싸움닭이 네 마리 있는 것 같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말하는데, 필리핀에는 닭싸움 경기장이 있어 투기 돈도 많이 몰린다고 했다.
그곳에 있는 필리핀인에게 닭싸움 경기장에도 나갔냐고 물었더니 몇번 출전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닭을 1,000페소에 팔테니 살라면 사라고 한다.
그러면서 즉석에서 닭싸움을 보여준다.
실로 오랜만에, 아니 초등학교 때 보고 처음보는 박진감 넘치는 한 판의 닭싸움이었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문제가 생겼다. 한국에서 돈을 붙이기로 했는데, 돈이 아직도 안 온 것이다. 그래서 물품대로 돈을 사무실에서 주고 물건을 운송시키기로 합의를 보고 일행을 출발하기 했다.
이번에는 가려고 하다, 일이 생겼다.
아까 말했던 집안일을 하는 도움이(필리핀에서는 '메이드'라고 한다고 한다.)를 부탁한 두 아가씨가 따라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운전을 하는 홍사장, 메이드를 필요로 하는 김사장, 그리고 비즈니스 파트너 민사장, 나. 이렇게 네 사람은 예기치 않은 일이 술렁였다.
허지만, 김사장은 그저 이야기 해본 일인데, 집에 빨래걸이도 엉망이라며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이다.
나이는 18, 17살의 자매이고 아저씨 댁에 놀러왔다가 이런 제안을 받았다고 하는 순진한 10대였다. 차에 타고 창고 문을 나설 때는 이웃에 사는 아저씨가 보태 쓰라고 창너머를 100페소를 보이며 갖고 가라고 한다.
우리는 필요 없다고 그 돈을 사양했지만, 그 마음이 사랑스럽다.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을 따라가는 것은 그들에게는 흔치않은 행운인지도 모르지만, 만일 그 곳에 그들의 부모가 있었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차를 타고 오면서 부모님은 어디계시냐고 물었더니 시골에 계신다고 한다.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왜 무섭냐고 오히려 묻는다.
내가 무안해짐을 느낀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지만, 한 달을 하고 돌아올지 두 달을 하고 돌아올지 모르는 일, 그들 하기에 달렸지만....아는지 모르는지 뒤에 타고 오는,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나이의 학생들,
간혹가다 자기 나라 말로 무어라 말하곤 말없이 타고 온다.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차는 목장길을 들어섰다.
차창에 보이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두 아이들의 아름다운 앞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