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천 월미도와 자유공원, 신포시장을 대학동창끼리 가는 날... 그런데, 나에게는 두군데 갈 곳이 있어 심난한 날이기도 했다. 1시에 양재에서 친구 아들 결혼식에 참석을 해야하고 2시에 인천에 가야하니 어쩔수 없이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늦을 예정이니 시간에 맞추어 온 사람들은 스케줄대로 움직이라고 했지만, 어쩔수 없는일.... 그래도, 다행히 이상용과 한태현이 기다려 주어 같이 묻어갈 수 있었다.
참석 인원은 인천에 사는 오늘의 호스트 이성수, 이상용회장, 김중재, 한태현, 조덕형, 정수나모, 차성용, 박병수, 김웅남, 그리고 나, 이렇게 10명이 참석을 했다. 날씨도 미세먼지 없는 전형적인 이른 봄날씨... 월미도 공원의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인천시의 정경이 눈에 선하다. 가을 날씨같이 쾌청한 날씨는 아니지만, 멀리 인천대교와 영종도가 보이고 송도 신도시도 보이고... 인천에 사는 이성수 가이드가 걸어오면서 인천에 대한 지형설명부터 옛날에서부터 근래에 이르기 까지의 변천과정을 열심히 설명을 한다. 일주일에 두어번 인천에 오는 나이지만, 같은 길만 오다 보니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많다. 월미도 공원을 구경하고 내려오다가 대한제당 앞에서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 인천역에서 다시 왔다. 급히 버스를 탔지만, 식구들이 열명이 되다보니 기본요금 3,000원 밖에 안나오는 택시를 타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던 것 같았다.
인천역에서 차이아 타운에 들어섰다. 4시 정도 쯤 되었을까? 입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로 발디딜틈이 없는 것 같다. 테레비에 나왔다는 음식점도, 소위 공갈빵이라고 하는 중국빵가게에도, 꼬치구이 집에도 사고싶어하는 사람들의 줄이 수십미터는 족히 될 것 같다. 전에 평일날에 와 봤을 때는 사람들이 너무 없어 "어떻게 먹고 살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하여튼 주말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다시 온다면 평일날 오는 것이 대우도 받을 수 있고, 좋을 것 같다.
차이나 타운을 조금 올라가 오른쪽으로 꺽어 올라가면 삼국지 그림 벽화가 있는데,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에서 시작해서 삼고초려, 칠종팔금 같은 명언들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 놓았다. 차근차근 그림과 글을 읽어 나가면 어느새 삼국지 몇권의 책을 읽은 셈이 된다. 삼국지의 내용을 이해하면 삶의 지혜를 얻는다고 하는데, 한 구절만이라도 마음에 담고 가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
삼국지의 거리가 끝나면 곧 자유공원에 들어선다. 월미도 공원을 걸어서인지 몇 미터의 가파른 길도 허벅지에 피로감이 오고 숨이 거칠어진다. 조금 올라가 공원의 왼쪽에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탑을 들렀다. 전에 왔을 때는 그냥 스친 곳인데, 안으로 들어서니 뾰쭉한 몇개의 알루미늄 첨탑이 거대하다. 사진에 관심이 있는 김중재는 첨탑 및에서 파란하늘과 위로 뻗어 올라갈 수록 뾰쪽하게 모아지는 기하학적인 구도를 찍어 보이며 한 마디 한다. "하늘에 구름이 있으면 더 멋진 사진이 될텐데..." 나는 앙상한 가지와 첨탑의 사진이 어떠냐고 말했는데, 역시 한 수 위의 사진 보는 경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자유공원의 역사적인 명물은 맥아더 동상이다. 운동권의 출신들이야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의 존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6.25 전쟁에서 졌다면 오늘의 발전은 없었을테니 말이다.
자유공원을 가로질러 예약한 신포시장의 화선회집까지 약 30분 정도 걸었을까? 친구들 모두가 배가 출출한 것 같다. 만나는 시간에 오후 2시 인천역이다 보니 점심을 제대로 먹고 오지 못했기때문에 나의 배에서도 "쪼로록" 난다. 오늘 저녁의 메뉴는 민어회를 먹는 다고 하는데, 전에 주안에서 병원을 하고 있는 고딩 친구가 신포시장에서 한턱을 냈을 때 먹은 민어회 생각이 난다. 신포시장에 들어서니 정식 시장 명칭이 신포시장이 아니라 "신포국제시장"이다. 신포시장에서 세집이 민어회를 취급한다고 하는데 그중의 하나인 "화선회집"에 들어갔다. 주인 아주머니의 상냥한 인사가 이어지며, 누가 물은 대답을 하는지 "성은 박이요 이름은 화선입니다"라고 한다. 멋진 가게 설명이다. 유행가 가사를 떠올리는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예약된 회집에서 스끼다시가 나온다. 스끼다시는 밑반찬과 부친게와 새우가 나오니 푸짐한 것은 아니다. 민어회 9만원 중짜리 3개를 시켰다고 한다. 드디어 민어회가 나왔다. 종업원이 민어회의 설명을 하는데, 검은색이 민어껍질이고 민어의 부위별로 나왔다고 하는데, 서울에서 먹는 회와는 비교가 되지않는다. 얄팍하고 가늘게 썰어 나오는 서울의 회에 비교하면 두께가 10배 정도는 될까? 썰어 놓은 회를 너댓개 입에 넣어 먹으니 벌써 부터 배가 불러온다. 소주 몇 잔을 먹었는데도 소식이 없다. 역시 소주는 회와같이 먹어야하는가 보다. 원래 오늘은 호스트가 이성수이지만, 지난 달에 공석에서 뽑은 산악회장을 추인하는 날이기도 하기에 차례대로 건배 제창이 있었다. 한 잔 두 잔이 들어가니 친구들의 지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오늘의 호스트 이성수는 시종일관 인천에 대한 지리, 풍물, 역사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무래도 친구들이 인천시의원이라도 추대를 해야 할 것만같다. 역시 토박이 인천친구이다. 그런데, 김웅남이 성수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해병대 노래에 인천의 성냥공장이 나오는데, 있었던거야?" 뜻밖에 나온 말이지만, 옛날에 나도 궁굼했지만 그저 노래의 가사려니 생각은 했는데, 인천토박이가 대답을 한다. "옛날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 공장이 있었는데, 크게 불이 나서 전쟁이 일어 난 줄 알았다." 고 대답 한다. 당시에 여공들이 머리도 타고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노래처럼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을 알았다.
회집을 나오는데, 술을 많이 먹은 거 같은데 술이 별로 취하지 않는다. 소주를 꽤 먹은 것 같은데, 아마도 좋은 안주 탓이리라. 그런데, 동인천에서 전부 전철을 탄다. 인천 토박이 성수도 주안에 산다고 한다. 요사이 인천에 사는 오리지날 토박이는 드문 것 같다. 전철에서 우리들의 대화소리가 크게 들리는지 옆에 사람들이 자리를 옮기는 것 같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절대로 크다고 생각하지않는데, 그렇게 들리나 보다. 집에서도 딸아이가 내가 소리를 올려 놓은 테레비 볼륨을 자꾸 줄이는 것을 보면 나이는 어쩔수 없나 보다. 의식적으로 말소리를 죽이며 핸폰을 본다. 동작 빠른 김웅남이는 벌써 월미도에서 찍은 사진을 밴드에 올렸다. 나도 사진을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보내니 참석을 못한 친구들까지 반응이 온다. 소리를 내고 대화를 하는 것도 정이 있지만, 카톡으로 사진을 공유하며 서로 이야기 하는 것도 보기에 따라 삭막할지 모르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시간이 갈 수록 듣는 것은 시원치 않지만, 핸폰이란 문명의 이기로 젊은이들 같이 묻어갈 수 있으니 괜찮은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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