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신던 구두가 더욱 낡아 보인다.
흠도 나고 흙먼지도 나, 경기도 좋지않은 요즈음 내 모습 마저 더욱 초라해 보인다.
오후에 친구들 모임도 있어 단골 구두 닦는 집에 찾아갔다.
구두를 벗으며 주인에게 내 놓으니 한 마디 한다.
“오래 신으셨네요?”
아마 작년, 재작년에도 이 구두를 보았기 때문에 하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네, 오래 신었지요. 한 사오년은 되었을걸요?”
“요사이 이렇게 구두를 오래 싣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요?”
하고 너덜웃음을 지은 적이 있었다.
나는 구두도 한 군데에서만 닦는다.
언젠가 영등포 역에서 구두를 닦은 적이 있는데,
구두약은 별로 묻히지 않고 가죽이 달토록 5분 여를 문지르며 광을 내는 젊은 친구가
좀 가엽기도 하고 안쓰럽게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장님은 약을 많이 바르고 불멕기로 1차 광을 내고
물멕기로 광을 마무리 하는데 1분 여 정도 밖에 걸리지않고 광도 오래가는 것 같다.
광을 내고 나니 가죽이 오래되어 약간 튼 것을 제외하고는
번쩍번쩍한 광에 새 구두가 된 것 같았다.
어찌나 광이 나던지 개미도 줄을 타고 오르지 못할 것 같고,
파리가 앉아도 미끄러질 것 같고 내 얼굴까지 비출 것 같았다.
갑자기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6년 전 가을인 것 같다,
강동의 구두 가게에서 세일을 할 때 산 구두이다.
당시에도 발목까지 올라오는 올드팬션의 구두.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가을이 되면 신발장에서 꺼내 신던 구두.
매번 꺼내 신을 때마다 하얀 먼지가 낀 구두를 보고,
“이제 그만 신어?” 하고 망설이다가 구두를 닦아 놓으면 애인같이 사랑해주고 싶은 구두.
마음 같아서는 영원히 신고 싶은 구두이지만 수명이 정해진 구두…
오래된 나의 구두가 편안해서 좋다. 또한 나는 오래된 것이 좋다.
오래된 신발같이 사람도 오래 사귄 사람이 좋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어??” 하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는 사람.
구관이 명관이란 말은 적당한 비유가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카페도 이렇지 않을까? ^^
새로운 사람은 오랜 사연을 만들기 위해 만나고,
오래 된 사람은 더욱 길게 지속하기 위해 만나고...
오늘 저녁에 번개가 있는데,
새로운, 또는 지속된 만남을 만들기 위해 멋진 가을이야기를 나누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