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판/사는 이야기

삼겹살 데이(3월 3일).

달소래 2011. 3. 5. 23:08

 

 

눈오는 겨울도 이제는 다 지나간 것 같다.
그 추웠던 올해의 동장군도 계절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는 것,
꽃샘추위도 며칠 못가면 봄의 전령사인 노란 산수유에 자리를 내주어야만 할 것 같다.
며칠 전에 신문에서 오늘은 3월 3일 삼겹살을 먹는 날이라고 대형마트에서 돼지고기 세일을 한다고 해 잔뜩 벼르고 롯데마트 서현점에 갔다.
며칠전 딸아이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도 했기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마트에 가보니 선전에 나왔던 가격보다 이삼백원이 높은 1,360원(100g) 이다. 물론 국내산은 더 비쌌지만, 수입냉장육도 맛에서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해 질보다 양을 택하기로 하고 2kg를 샀다.
찌게도 끓여먹고 양념구이도 해 먹을 계획이다.
곁들여 먹을 야채, 마늘, 양념장도 사고 며칠 먹을 다른 것도 샀다. 집에 들어와 딸아이가 오지않아 전화를 하니 지 엄마한테 간다고 한다.
며칠 만에 상을 맛대고 저녁을 하려고 했는데.....,
속이 상하지만 마음을 추수린다.

간만에 소주 한잔이 먹고 싶어진다.
찬장을 열어보니 전에 사 놓은 소주가 많이 있다.
돼지고기를 후라이판에 굽고 야채와 반찬을 진열해 놓으니 진수성찬이다. 밥과 함께 컵에 술을 따르니 술병이 금방 줄어든다. 혼자 마시는 술,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 눈요기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 테레비를 켜 놓는다.
술 한 모금을 마시니 소주맛이 달다. 막걸리만 마시다 보니 한 동안 잊었던 소주 맛을 느끼는 것 같다. 안주로 상추를 펴 노릇노릇 익을 삼겹살과 양념장, 김치, 마늘을 넣고 한 입 넣으니 음식점에서 먹는 삼겹살은 저리가라다.
컵에 딴 술을 몇 모금 마셨나? 몸은 알딸딸, 얼굴이 달아오른다.

 

마침 테레비도 추억의 그시절 내용이 방영된다. 대구시내의 오래된 크래식감상실 르네상스가 나오며 90이 다 된 주인할아버지가 대구의 문인, 예술인들이 드나들었던 사연들을 이야기 한다.
이중섭화가가 종이가 없어 담배갑에 그림을 그렸던 이야기, 신청곡을 쓰는 메모지에 이중섭화가의 많은 그림이 쓰레기통에 들어갔던 이야기....
"뺏앗긴 들어도 봄은 오는가"를 쓴 몇편의 시를 남기지 못했던 이상화 시인의 옥고를 치른 이야기 등을 들으니 나도 학창시절이 떠 오른다.

당시엔 크래식 음악 다방도 많이 드나들었는데....
종로에 르네상스와 충무로(명동 쪽인가?)의 아폴로 음악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강의실같이 배치된 깊숙한 의자에 앉아 지긋이 눈을 감고 음악에 빠졌던 일들...
앞 쪽에 참한 여학생이 앉아 있거나. 익숙치않은 곡이 나올 때를 제외하고는 그저 눈을 감고 있었는데.... ^^
갑자기 옛날 가끔 음악다방에 같이 가던 친구가 생각이 나 전화를 해 본다. 밤 10시도 안됐는데 자는지 전화를 받지않는다. 갑자기 기분이 꿀꿀해진다.
'그래도, 술 한잔 먹을 수 있는 것은 행복한거야...'라고 스스로 달래본다.

 

핸드폰 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조금전에 전화했던 친구놈이다. 상가집에서 떠드느라 전화를 못받았다고 한다.
"야, 테레비에 음악다방 이야기가 나와 학교 다닐 때 같이 갔던 네 생각이 나 너한테 전화했다"
그랬더니 전화해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그래, 다음 주 막걸리 한잔 하자"

 

전화를 받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 주에 술 한잔 할 수 있기때문이 아니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아니 소주 한 병을 비워서 기분이 좋아졌는지도 모른다.
난 술 한 잔이 들어가면 우울한 마음을 잊어버리기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 혼자라도 내일을 향해 방이 떠나가도록 웃어보자..... ^^

 

(2011년 3월 3일 달소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