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하루였다.
일이 시원하게 풀리지 않다보니 더욱 그런가보다.
평소 한가할 때는 컴에서 살기도 하지만, 이날은 컴도 못 들어가고 전화로 음악회에 초청한다고 해서 이수인의 가곡사랑에 가게 됐다. 그것도 느지막한 4시경이니 거래처에서 큰 일이나 있는 듯 튀쳐나오다보니, 그래도 넉넉한 시간에 대흥 전철역에 도착해 마포아트센타에 갈 수 있었다.
몇번 하늘정원님 초대를 펑크내다가 이번 만은 전화받고 무조건 간다하고 오다보니 우리카페에서 가는 사람은 달랑 혼자가 되었다. 우리 카페를 비롯해 두카페에서 온 사람들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15명은 넘을 것 같다. 앞으로도 좋은 공연이 있으면 회원들이 미리미리 보고 참여를 할 수 있도록 일찌감치 공지하도록 부탁했으니 많이 참석을 했으면 좋겠다.
공연티켓을 받고 조금 일찍들어가니 왼쪽에 나 같은 남자가 앉아있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혼자 여행을 갈 때 할아버지가 옆에 앉은 것에 비유를 할까? 후훗
우야튼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연을 보고 있는데도 오른쪽 3자리가 비어있어 자리를 옮기고 나니 1등칸에 홀로 타서 음악을 보는 느낌같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어두운 무대가 조명과 함께 환해지며 인형같은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큰 무대에 조금은 당황이라도 한 듯 머뭇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눈에 넣기라도 하고 싶다.
어린이들의 노래, 동요작가 이수인님의 "앞으로", "어린이 나라", "아빠의 얼굴", ... 등 주옥같은 노래의 때묻지않은 아침이슬같은 목소리는 나를 동심의 세계로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이어서 가을밤에 듣는 귀에 익은 "고향의 노래", "하얀 그리움", "내맘의 강물"은 육성으로 듣는 테너,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피아노 반주와 함께 나를 젊을 때의 감성으로 몰아갔다.
난 이어지는 공연에 빠져들었다. 내 옆의 빈자리에 사람이 앉는 것 같다. 부드러운 여인네 손의 감촉과 함께 "별빛이 흐리는 밤에" 가을 밤의 "석굴암" 의 계곡을 느끼기도 하고, 살며시 잡은 손은 어느새 두 산 봉우리에 올라 "만월"을 바라보기도 한다. 눈을 감고 이대로 이 밤이 지속됐으면 좋겠다.....
몇 사람의 여자 목소리와 함께 눈을 떠보니 옆의 부드러운 손과 여인은 안개처럼 홀연히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것은 환상적인 음의 조화인 합창.
합창 단원들의 호흡소리까지 들리는 듯해서 좋고, 하나 같은 입모양이 좋다. 올 여름 신촌골에서 있었던 졸업 30주년 홈컴밍 행사에서 합창을 연습하다 중도에서 포기한 일이 생각난다. 처음에는 악보도 볼 줄을 몰라 헤멨고, 내 파트의 목소리가 나지않아 애먹은 일이 있어 합창의 어려움을 알았다.
이번 음악회는 다른 음악회와는 색다르게 어린이의 동심의 세계와 성인의 원숙함과의 조화와 독창과 합창과의 조화가 돋보인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조화로운 삶이 그날의 테마였는지도 모른다.
음악회가 끝나고 간다고 하늘정원님한테 문자를 하니 다른 산팀하고 뒷풀이를 하자고 한다. 저녁은 먹었지만, 전에 내가 가입했던 카페라 통성명을 하면 알 것 같아 합류를 했다. 모인 사람들이 비슷한 또래인 것 같다. 마침 분당에 산다는 갑장을 만나 집에 들어오니 12시가 넘는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 가슴에 와 닿는 가을밤의 앙상블이었다.
** 이수인 선생님은 40여년간 KBS에 재직하시면서 어린이 합창단, 성인 합창단지위 및 단장을 역임하셨고, 수많은 동요, 가곡, 합창곡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날은 이수인님의 아름다운 곡, "앞으로", "어린이 나라", "둥글게 둥글게", "아빠의 얼굴", "별", "구름", "오솔 길에서", "고향의 노래", "외갓길", "석굴암", "별 빛이 흐르는 밤에", "하얀 그리움", "불타는 강대나무", "외갓길", "까치집", "내맘의 강물", "만월" 이 불리워졌습니다.
(2010년 10월 9일 달소래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