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오래된 사진이다. 중학교 3학년 때 1966년 5월 8일 집에서 올라오신 어머님과 누님과 같이 어머니 날(당시는 어버이 날이 아녔다)을 기념하기 위해 대전의 모 사진관이서 찍은 사진이다. 며칠 전 우연히 책상의 정리하다 발견한 옛날 앨범. 뽀얀 먼지를 털면서 엄지와 검지에 손때를 묻혀가며 오래된 앨범 속의 사진 한장 한장 정리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문득 스캔하여 글과 함께 보관하고 싶어짐을 느꼈다. 먼 훗날 나의 지금의 기억도 흐릿해질 쯤 이면 이것도 좋은 자료가 되리라.
이 사진은 보면 볼수록 사진 속으로 빠져든다. 가족사진이 다 그렇겠지만, 그 때의 사건이나 추억들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린 중학교의 나이에 객지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정확히는 모르나 누님이 대전여고를 들어가다 보니 아버지의 지론인 “망아지가 낳으면 제주도로 사람이 낳으면 서울로.”라는 말에 따라 도시로 도시로 교육을 보내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진 속의 나의 어머니, 내가 중3때니 어머님의 나이는 30대 후반, 우리카페에는 턱걸이 할 나이였지만, 그 옆에 있는 소년이 나이가 들어 당시의 어머니 나이를 훌쩍 넘은 50대 중반에 이 사진을 보니 세월의 무상함에 가슴이 미어지고, 새록새록 어머님 생각에 빠져봅니다.
조금은 엄격하신 아버님에 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일편단심이라 처음 중매를 보는 순간 아버님이 좋아하셨을 정도로 미인은 아니지만 빠지지는 않으셨던, 언제나 별 말이 없으시고, 몸으로 행동으로 자상함과 사랑을 표시 하셨던 어머니.
대전에서 자취하는 두 자식들이 안타까웠던지 김치와 밑반찬을 2시간여나 걸리는 완행열차나 털털거리며 하얀 먼지를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시외버스를 타고 수시고 갖다 주시던 어머니.
그 당시엔 자동차 사고도 많았던 시절, 보험제도 제대로 실시되지도 않아 사고가 나면 개인차주가 피해자를 보상해주고 다 책임을 졌는데, 운영하고 있던 버스가 인사사고로 집안이 어려웠을 때에도 꿋꿋하게 집안을 꾸려 가시고 자식들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셨던 어머니.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며느리의 눈치를 보지 않으시겠다며 홀로 사시면서 장남인 우리 집에 가끔 들르셔서 소래와 보람이를 예뻐해 주셨던 어머니.
그런데, 육십 대 중반 어느 날 갑자기 세 번째 쓰러지신 고혈압에 이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엠브런스에 실려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닌 끝에 혜화동 고대병원에서 돌아가셨던 어머니.
한동안 엠브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나면 긴박하고 처절했던 생각이 났지만, 마지막에 어머님을 모시지 못한 것이 지금도 더욱 한스럽기만 합니다. 후회해본 들 소용없는 쏘아 놓은 살이고, 그저 지나버리면 그만인 것이 삶이고 세월이라지만, 지금은 효자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부모님이 살아계신 분들은 오늘 하루 쯤 안부전화라도 하심이 어떨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