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페의 결혼에 대한 글을 보다가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에서 로잘리가 잔느에게 말한 말이 생각이나 한 고등학교 학생의 독후감을 옮겨 놓는다.
여자의 일생 / 모파상 작. (발안농고 2학년 조 유호)
<그녀는 가장 위대한 승리자였는지도 모른다.>
43세의 젊은 나이로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 기.드.모파쌍(GUY.DE.MAUPASSANT)의 여자의 일생이 발표된 것은 1883년으로 단편만을 써 왔던 모파쌍이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입니다.
평범한 어느 한 여성의 생애를 그리므로써 그 나름으로 인생의 한 전형을 검토하려 했던 이 '여자의 일생'은 시적인 사랑만을 꿈꾸어 가는 여고생들의 이성을 일깨워주는 작품으로 나에게 깊은 감명과 인상을 주었습니다.
오늘은 내일을 잉태하고 내일은 더 나은 숱한 날들의 잉태해 나가며 시간의 수레바퀴는 쉬임없이 돌아가고 사이사이에 산재해 있는 악과 악의 파편들은 항상 우리를 유혹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겪어야하는 고통, 그건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붙잡아 두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 일겁니다. '로미오와 쥬리엩'에서의 여 주인공 '쥬리엩', '부활'에서의 '카츄샤', '테스'에서의 '테스', '춘희'에서의 '마르그리뜨', '죄와벌'에서의 '쏘냐', '인형의 집'에서의 '노라', 그리고 여기 '여자의 일생'에서의 '잔느'등, 세계명작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남성의 이기심과 잔인성으로 인하여 처참하게 저 밑에서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사랑에는 무참히 쓰러진 가슴이 있고 또 무수히 많은 괴로움이 있는 것 입니다.
남편에게서 그리고 자식에게서까지 배반당한 기구한 운명의 여주인공 잔느는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여인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깊은 공감을 느낀 이 '여자의 일생'을 소개하렵니다.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되는 잔느의 수도원 여학교 졸업날은 밤부터 비가 내라고 있었습니다. "넘쳐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인적없는 거리에 가득 찼고 이 거리에 늘어선 집들은 해면처럼 습기를 빨아들여...."라는 배경이 주는 침울한 느낌에서 작자는 이미 잔느이 앞날을 암시해 준 것 인지도 모릅니다.
졸업 후 즐겁고 자유로운 생활이 시작 됩니다. 순결하고 천진한 시의 세계에서 그녀의 가슴은 행복으로 충만됩니다.
여기까지 읽고 책을 덮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녀의 행복이 짜릿한 전류를 타고 내 가슴에 옮겨지고 감당 해내기 힘든 벅찬 감격이 주위를 감싸줍니다. 행복하기만 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사제의 소개로 라마아르 자작을 알게 되었고, 드디어 둘만의 세계를 마련 합니다. 운명이 결정되는 날 쟌느는 오직 온 몸에 커다란 공허감을 느끼고 남편이 된 라마아르가 이방인 처럼 생각됩니다. 그건 아직도 시적인 사랑밖에 알지 못하는 소녀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날밤 그녀는 전혀 다르게 꿈꾸어 왔던 도취와 파괴된 소중했던 기대와 이미 금이 가버린 축복의 환멸속에서 마음속까지 절망해 버립니다.
꿈과 같았던 약혼시대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인생은 어느새 짙은 회색의 우수로 가득차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맥빠진 소리로 말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늘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군요." 어찌 생각하면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난 쟌느의 위치에 동정이 갔습니다. 일단 결혼한 후에는 이상스러우리만치 잔인하게 냉정해지는 남성들의 생리에 매스꺼움을 느꼈습니다.
'줄리앙'과 '로잘리', '줄리앙'과 '질메르뜨' 와의 불륜의 관계, '줄리앙'은 차라리 철면피였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잔느의 마음은 평온했고, 질투나 원한을 느끼는 대신 멸시감이 솟아 오름니다. 어머니가 죽은 후 어머니마저 부정한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실망하는 잔느에게서 때 묻지않은 깨끗한 인간 본래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소녀다운 동경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이야기 내용자체가 증오하고 조소해야할 진실 외에도 동정해야 할 진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이 죽고 그녀의 모성애는 차라리 집념으로 바뀌지만 아들의 방종과 사랑하고 믿던 아버지의 죽음은 잔느로 절망시키고 그녀는 모든 것을 하나 하나 잃어갑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더 이상 잔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옛 주인을 찾아 온 로잘리와 따뜻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는 아들 '뽈", 지나치게 비참해진 잔느에 대한 작자의 동정이 운명의 신을 관대하게 이끌어 왔나봅니다.
마지막에 "그리고 보면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것인가 봐요"라는 작자의 의견을 대신하는 로잘리의 말은 아직도 생생한 여운을 남겨 줍니다.
이상 대강의 줄거리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책을 읽고 나는 줄리앙과 그를 대하는 잔느의 대조적인 인간상에서 자기긍정의 세계가 이 자체로 존재함을 느끼며 '조그마한 진실 이라는 함축헝 있는 글귀가 조심스럽게 덧붙여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잔느는 반드시 남자에게 고통받는 여자만은 아니었던 것 입니다. 그녀는 자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지 않고 자신을 이겨 나간 어떻게 보면 가장 위대한 승리자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의 일생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진지한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녀의 기구한 운명에 동정하지만 한 평범한 여성이 걸어 가는 길이 이런 것이려니 생각하며 여성으로서의 이 위치에 만족하려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많은 난관에서 무난히 자신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길러야겠습니다.
조용히 잔느를 위해 기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