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추억의 사진첩

고등학교 때의 추억

달소래 2009. 5. 23. 00:47

 

 


 

고등학교 때 사진이다.

증명사진이 있길 다행이다. 서울에서 수십번을 이사하다보니 앨범도 다 없어지고 고등학교 때의 남아있는 사진도 몇 장 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입학시험 때가 생각이 난다.

대전고등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역시 나의 의견보다는 아버지와 다른 사람의 의견이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사촌형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기왕이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좋다는 아버지의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옆에서 사촌형이 서울에서 공부시키는 것이 좋은 대학에 가지 쉽다고 부추겼는지는 모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사촌형이 어려워서 등록금도 아버지가 몇 번을 도와주기도 했고, 아버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기에 당시에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고등학교를 응시했지만, 떨어지고 후기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학교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시험을 다시 치려고 공부도 하였지만, 열심히 공부해 희망하는 대학교를 들어가는 것이 1년을 버는 것 같기에 포기를 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 때 재수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에는 성북동에서 사촌형과 같이 하숙을 했다. 사촌형이 의대를 다녔는데, 같이 자는 방에 사람의 해골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도 보았고, 포르말린 냄새가 나는 사람의 발목도 보았다.

성북동의 그곳,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한 번 가보고 싶다.

 

다음으로 하숙집을 옮긴 것은 길음동이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한 길을 건너 길음동 사창가였다.

한번은 옆방에 하숙하고 있는 대한체육회에 다니는 고대나왔다는 사회인이 있었는데, 그사람하고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서라벌 예대에 다니는 사람이 가끔 내방에서 건너와 같이 잔 적이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여자를 데리고 와 자리를 피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순진하게 공부만 했던 나 였지만, 일학년 때 목표로 했던 서울대 법대를 지원하기에는 실력이 따라 주질 못했다.

 

길음동에서 하숙할 때, 휴일 날 간혹 들렀던 곳이 있었다. 영화관인데 한번에 두편을 상연하고 관람료도 저렴한 미도극장과 미아리극장이다. 이런 영화구경이 아니면 하월곡동에 사는 노태호나 김형원이를 만나서 탁구장에 가 탁구를 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당시에는 휴일날 가볼 곳이라고는 남산과 창경원(지금의 창경궁), 덕수궁, 비원이 고작 이었으며 청소년이 즐길만한 놀걸이가 없었다.   

 

무엇을 위해 증명사진을 찍었는지는 모르나 때묻지 않은 고등학교 때의 사진을 보니 이것저것 생각이나 두서없이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