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도를 다녀와서...
2003년 5월 27일.
오늘은 월요일…
어제의 산행때문인지 아침부터 좀 피곤하다.
게슴츠레한 눈을 억지로 뜨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린다.
벨소리가 이상하다.
“무슨 전화지?”
하고 말해 놓고서 가만히 들어보니 내 주머니에서 소리가 난다.
며칠 전 동창들의 전화는 벨소리를 바꾸어 놓아서 못 알아 본 것이다.
손병림의 전화다. 전화로 하는 소리가 다짜고짜로 말을 한다.
“야! 왜 산행후기가 안 올라오냐?”
하며 어제 2차 노래방에 왔었다고 한다.
‘자식, 성질도 억세게 급하네….’
그래도, 병림이 같이 동창회 일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오후에 시간이 있어 어제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본다.
아줌마들이 15명이고 친구들은 18명으로 기억되는데 이름을 적어보니 한 사람이 모자란다. 나이가 먹으니 어제 보았던 친구들도 생각이 나지 않는가 보다.
어쨋튼 친구들 이름은 이 글을 끝에 적기로 하고, 총무한테 확인을 하고 올려야겠다. 재미있게 놀고 나서 참석자 이름에서 누락되면 정말 기분 문제니 말이다.
여하튼 일요일의 모임은 우리 동창들의 기록에 남을 만하다.
회장 말대로, 고등학교 졸업 후 수학여행을 제외하고는 버스를 대절해서 놀러 간 것은 처음이니 말이다.
그리고 삼도봉에 오른 뒤 거의 일년 만에 30명이 넘게 놀러 갔다는 것은 현 회장의 열성적인 활동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어제는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 이른 아침에 회장의 전화가 없었더라면 나도 침대 위에서 일요일을 보냈을 것이다. 애들에게 물어보니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날 늦게 온 두 사람은 아마도 회장의 전화를 늦게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정보다 30분이 늦게 10시에 영종도로 향했다.
가랑비가 와서인지 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빨리 도착했다. 버스를 통째로 배에 싣고 출발을 했다. 바다 바람을 쏘이러 갑판에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폐부까지 스며든다. 그런데, 10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배가 접안하려고 한다. 알고 보니 무의도는 영종도에서 코앞의 섬이다. 수영 잘하는 사람은 헤엄쳐서도 갈 거리이다.
배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버스로 가니 도착한 곳이 하나개 해수욕장.
넓은 백사장에 방갈로도 오륙십개는 족히 될 것 같다. 가족 단위의 피서지로서는 안성맞춤인 것 같다.
음식점은 미리 예약해 놓은 것 같다. 산에 오르지 않을 사람은 조개를 잡으라고 했지만 전부 산에 오른 것 같다. 삼십 여명이 일 열 종대로 산을 오르니 늘어선 길이만해도 몇십 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호룡곡산의 정상까지는 높지 않은 200여미터가 된다고 한다.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라 하니 동네 근처의 산을 오르는 정도이다. 그런데도 처음 오르는데는 땀이 제법 난다. 땀에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보고 상익이가 ‘오르지도 않았는데 무슨 땀을 흘리냐’고 한 소리 한다.
다른 사람들도 쉬지도 않고 잘도 오른다.
산의 나무는 참나무 같은 큰 나무는 없고 작은 나무들로 우거진 산이다.
도봉산이나 관악산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전망과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에서 또 다른 맛이 있는 것 같았다.
정상에 가까이 갈수록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200여 미터라도 산은 산,
앞에 가는 아줌마가 힘이 든다고 밀어달라고 한다.
뒤에 가는 아저씨, 아줌마의 궁둥이를 밀어보지만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자 하는 소리다.
‘그렇게 힘이 없어서 어디다 써요’ 한다
‘그럼, 바꿔….’
‘원상 회복 시켜 줘요’
우리 또래의 나이에 흔히 듣는 소리다.
‘등산 좀 자주해서 좀 끌어드리지…….’
혼자 생각한 소리다.
드디어 호룡곡산의 정상.
멀리 하나개 해수욕장의 백사장이 뱀처럼 굽어 있는 것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곳,
단체사진도 찍고 배낭에 가지고 온 먹을 것도 먹는 곳인데 마나님들이 많이 왔는데도 먹을 것이 없다. 올라오면서 황인철이 부인이 수박을 준 것과 회장이 내놓은 수박이 전부다.
몇 조각 안도는 정상에서의 시원한 수박 맛에 순식간에 그릇은 빈 통이 되고 최규남이 빈 통 들고 먹지도 못했다고 푸념을 한다.
수박은 못 먹었어도 시원한 바람은 마음껏 나눌 수 있는 곳……
온 몸의 땀이 금새 말라버린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
시원한 바다 바람을 안고 가니 더욱 수월하다.
조금 내려가니 또 팻말이 나온다. 부처바위란 팻말인데, 샛길로 10미터 정도 들어가는 곳에 있다. 말이 부처바위이지 부처를 닮은 곳이란 찾아볼 수 없는 바위이다. 정말 풍화에 의해 깎여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조금을 내려가니 갑자기 앞이 탁 트이면서 바다가 펼쳐진다. 지금부터 환상의 길이 시작 되는가 보다.
해변의 절벽이 멀리 보이고 해변가는 밀려오는 파도에 하얀이를 들어내고 웃는 것 같았다. 내려가는 길도 통나무로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한 구비 돌아서면 바다가 보였다 가려지고, 해변에 가까이 왔을 때는 파도소리마저 ‘쏴아~~~’ 들려 정말 ‘환상의 길’다웠다.
여기서도 그냥 갈 수는 없는 곳,
‘한 번 박고 가야지’ 하며 포즈를 취하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누가 한마디……
‘박는데 소리도 없네’ 하자 한꺼번에 ‘하하하’ 웃어댄다.
‘박을 땐 소리가 있는 법인데…..’
누가 사진 찍는 것을 박는다고 말했는지 ………..
약 두시간은 족히 걸은 것 같았다.
산을 내려와 등산화를 신고 500여미터의 백사장을 걸으니 또 다른 맛이 있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마음이 날아갈 것만 같다.
식당에 들어가니 상을 차려 놓았다. 산에 올라가지 않은 사람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나오는 회는 맛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소주와 몇 첨의 회는 게눈 감추듯 없어졌다. 술을 몇 병을 먹었는지 기억에 없다. 어쨋튼 친구들에게 한 잔씩은 다 주고 받았다. 나는 술 먹느라고 매운탕은 맛도 보지 못했다.
내가 취하니 모두다 취한 것 같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회집 앞의 해변의 모래밭에 나갔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빙둘러 앉았다.
그리고 생음악으로 노래자랑을 시작했다. 누구누구 노래를 했는지는 기억에 나지않는다. 후에 사진을 보니 양국정이를 비롯해서 몇몇이 부른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억에 나는 노래가 있다.
그런데 기억이 생생히 나는 노래가 있다. 손인상이 선창으로 ‘인천에 성냥공장’이란 노래다. 가사에 나오는 외설적인 단어는 대충 흥얼대며 지나 갔지만 누구는 소리쳐 부르는 것 같았다. 마나님들 앞에서 그런 노래를 부를 생각을 하다니 그날 집에서 무슨 일이 없었기를 바란다.
차를 타고 오면서도 즐거움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술기운에 피곤이 겹쳐서인지 총무의 노래 요청에도 하나 둘 잠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노래를 안 부르니 총무에게 마이크가 자주 가고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 부른 노래를 또 부른다. 총무의 레퍼터리가 바닥이 난 것 같았다.
눈을 뜨니 신사동…………
노래방엘 간단다. 아직도 술이 깨지 않았는데…..
나는 일단 노래방에 들어갔다 총무한테만 이야기하고 슬며시 빠져 나왔다.
참!!! 마지막에 빠뜨릴뻔한 손님을 말하지 않은 것 같다.
7살 난 이문선이 아들과 이제 백일이 지난다는 이용건이 딸이다.
‘이거, 나도 하나 만들어????’
이후의 2막, 노래방에서의 사연은 손병림이 올릴 것이다.
무의도 참가자들(존칭 생략)
강희진. 김동욱. 김일현(부인), 박건배(부인), 박영인(부인), 손인상(부인), 신흥식(부인), 양국정(부인), 이광석, 이문선(아들), 이상익 이신형(부인), 이용건(부인, 딸), 이정국(부인), 이희상(부인), 최혁화, 최규남(부인), 한상희(부인), 허재성(부인), 황인철(부인),
(달소래 씀)